너희는 졸다 깬 모습도 이토록 사랑스럽구나.
어둠이 내린 밤, 껌껌한 학교 복도를 걷고 있다.
교무실에서 2층 열람실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역시 밤중 학교는 무섭다.
무섭지 말라는 듯 저기 멀리 창문이 환하게 빛나고 있는 한 교실이 있다.
문 여는 소리가 최대한 들리지 않게 손가락에 힘을 주어 살살 열어본다.
야간 자율학습, 줄여서 야자는 말 그대로 야간에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요즘 대부분 학교는 학생에게 온전히 자율권을 주는 추세다. 야자를 하지 않으려면 담임선생님께 그 이유를 말해야 했던 지난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학교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겠지만 이 학교는 학기 초면 야간 자율학습 희망자를 받고, 신청한 학생에게는 고정석을 배치해준다. 물론 예정에 없이 당일에 수시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도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
고정석 희망자가 별로 없었는지 열람실은 교실 하나 크기로 운영되고 있었다. 야자 감독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에 열람실에 들어가 아이들이 소란스럽지는 않은지, 무슨 돌발상황은 없는지 등을 살핀다. 담임선생님과 비담임 선생님 중 신청한 사람이 순서대로 하루씩 남아 야자감독을 맡는다. 담임을 맡진 않았지만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 신청했다. 선생님이 되어 야자감독을 해보다니, 그저 신기하고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물론 두 번째 야자감독 날부터는 ‘야자감독 날=야근하는 날’의 상징성이 더 강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있다 보니 선생님의 입장이 돼서 과거에 경험했던 일과 유사한 장면을 마주할 때면 기분이 묘하다. 학생 시선일 때는 야자 감독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도 공부를 잠시 쉬거나 졸고 있을 때마다 감독 선생님이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잠이 좀 많은 학생이긴 했다.
열람실 한편에 자리한 감독 전용 책상에 앉아 학생들을 살펴본다. 고정석 출석 체크도 하고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엔 이동이 없도록 제한사항을 알려준다. 워낙 조용한 분위기라 특이사항이 없으면 같이 공부를 하는 편이다. 미리 책을 챙겨 와 읽기도 하고 다음 수업을 정리하기도 한다. 꽤나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잠이 많은 학생이 선생님이 된다고 잠이 없어지진 않나 보다. 이상하게도 계속 졸리기만 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잠을 깰 겸 잠시 일어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쓱 둘러본다. 수업 때 교실에서 보던 아이들도 몇 보인다. 아는 선생님이 감독으로 들어와 반갑다며 소리 없이 인사하는 학생들도 있다. 지필고사나 수행평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이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구나 싶어 기특하다. 좀 더 돌아보았다.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든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멋있는 사람이다. 야자 하는 인원 수가 그리 많지 않아 석식이 없는 게 안타깝다.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은데 학교 밖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거나 편의점 라면으로 때우는 모양이다. 맛있는 집밥을 포기하면서까지 공부하는 것이라면 멋있는 걸 넘어 존경스러운 학생들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면 꼭 어떻게든 보상을 받을 거다.
책상에 앉아 가만히 넋 놓고 있는데 졸던 학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원래 보던 책을 봤다. 학생이 당황해할 것을 생각하니 과거의 고등학생이었던 내 모습이 겹치며 웃음이 났다. 졸다 깬 모습도 이토록 사랑스러웠구나. 저런 모습이었다면 과거에 감독 선생님 눈을 일부러 피할 필요는 없었겠다.
10시가 다 돼서 열람실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끝까지 남아 공부한 학생들과 어두 껌껌한 학교 복도를 나섰다. 남학생들은 휴대폰 플래시를 켜며 앞장서서 갔다. 무서움의 감정은 모두가 비슷할 텐데 용감한 모습이 제법 든든하다.
학교 밖이다.
학생들은 졸린 눈을 비비고 있지만 오늘 하루 오랫동안 앉아 공부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 듯 보였다.
학교를 벗어난 세상에서 시원한 공기를 같이 마셔본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도 교복을 벗고 학교를 벗어나는 날이 오겠지. 세상이 너무도 넓어서 그 앞에 막연해질 때 오늘의 인내심과 성취감이 큰 힘이 되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