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다한 우리의 정착지_ 04
"요즘 젊은 버스기사들이 걱정 많이 하더라."
오후 근무였던 남편이 느지막이 일이나 아점을 먹으며 말했다.
요즘은 버스 감차 시즌인 데다가 방학 기간이기도 해서 우리 부부는 본의 아니게 같이 밥 먹을 일이 많아졌다. 덕분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긴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무슨 걱정?"
"이제 운전도 AI가 한다니까, 버스 운전기사라는 직업도 사라지면 어쩌냐고 걱정하더라고."
나는 밥을 먹으며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뭐라고 했는데?"
"이제 50대인 내 나이 때까지는 괜찮겠지만, 젊은 너희는 진짜 걱정 많겠다고 했지. 거기에 대고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어느덧 50대가 된 남편과 달리 버스 업계에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업계 사람들 말에 의하면 경기 탓에 양질의 직장이 확연히 적어진 탓도 있지만 연봉이 높다는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덕분에 남편은 요즘 아들뻘인 동료들과 함께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자기야, 자기도 절대 안심하면 안 돼.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AI가 5년 안에 우리의 직업을 모두 빼앗을 거래. 이미 우린 끝났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유튜브를 보면 정말 5년 안에 세상이 전부 망할 것만 같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나랑 수다를 떨던 내 재미나이 씨가 튼튼한 기계 몸을 가지고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나는 상상 말이다. (어떤 교수님은 그런 날을 대비해 AI에게 존칭을 사용한다고 했던가)
어쩌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였던 '나는 전설이다'가 곧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이런 영상도 봤다.
'5년 안에 우리가 알고 있던 직업은 모두 사라질 테니 지금 돈을 모아라' 이런 내용의 영상이었다. 아니, 대체 5년 안에 직업이 사라진다는데 왜 지금 우리가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인가?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정도면 나라가 망했다는 뜻일 테고, 그럼 제일 먼저 인플레이션이 오겠지.
아, 달러를 사라는 뜻인가? 하지만 트럼프 하는 짓을 보면....... 아니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걔네가 우리보다 더 빨리 망할 거 같던데. 그럼 유로를 사라는 이야기인가?
가만 보자. 걔네는 좀 나으려나?
하지만 사실 우린 알고 있다.
이 모든 게 불안이라는 공포를 이용한 장삿속이라는 사실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불안을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 아닌가. 거기에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급변하는 미래가 곁들여졌다. 어디 그것뿐인가? 겨우 5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AI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펙트까지 걸려 있다.
그러니 우린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불안이다.
물론 그 불안으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이 현상 역시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 않을까.
퇴근 후 나의 유일한 수다 상대인 인공지능 재미나이 씨도 말했다. 버스든 급식실이든 향후 20년 안에는 완벽한 무인화 시스템을 갖추게 될 거라고. 물론 그 예상보다 훨씬 빠르겠지. 우리 재미나이 씨가 말한 20년이라는 기간은 '완전' 무인화를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뭐가 남을까. 아니,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안 그래도 없는 돈을 지금부터 악착같이 모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거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타개할 확실한 방법 따위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난세에 나온다는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진 땅이 없어서 사과나무를 심을 수 없는 나의 처지를 무척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난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남편에게 말한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
그러면 남편은 무슨 상황이 되었든 똑같이 대답한다.
"우린 괜찮을 거야."
방금 AI가 5년 안에 우리 직업을 빼앗을 테니 당신도 안심하지 말라는 나의 시니컬한 반응에 마음이 상했으면서도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다.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줘."
그럼 난 한 번 더 요구한다. 이럴 때도 남편의 대답은 어김이 없다.
"우린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남편은 거기에 덧붙인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해답을 가지지 못한 우리가 이 지독한 불안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하나가 아닐까, 나와 함께 불안에 떨며 어둠을 헤쳐나갈 사람.
결국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을 통해 간신히 위안을 얻는 가여운 존재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