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먹의 힘
비가 오면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브라질의 벨렘.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오 전후로 1시간씩 비가 내리는 신기한 도시였습니다. 호텔 매니저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어시장에서 튀긴 피라니아를 먹을 때도 선한 부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멀리 도망가는 남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제 지갑을 훔치려 했다고 얘기해 줬습니다. 브라질에서 소매치기 조심은 종종 듣는 얘기였지만 벨렘의 특이한 기후와 어우러지며 더 묘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아마존 강 초입에 위치한 이 곳에 묵으며 아마존으로 향하는 여정이 그려졌습니다. 아마존은 이 곳과 마찬가지로 아름답지만 쉽지 않은 여행길이 될 것 같았습니다. 벨렘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고 아마존의 거점 도시 마나우스로 향했습니다. 배를 택했습니다. 가장 싸기도 하고 아마존의 지류를 타고 갈 수 있는 좋은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배낭만 메고 배에 오르려는 저를 보고 옆의 아저씨는 무언가를 가리켰습니다. 손이 향하는 곳은 해먹 판매소였습니다. 필요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급하게 하나를 구매했습니다.
마나우스까지는 3박 4일의 일정. 어디서 자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가장 싼 티켓을 샀기에 기대는 안 했지만 내심 좋은 방이었으면 했습니다. 직원에게 손짓 발짓 섞어가며 침실을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답은 외부의 천장이었습니다. 천장에 일렬로 쭉 배열돼 있는 갈고리들.
그제서야 해먹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나의 방은 해먹. 내 몸 하나만 허락하는 공중의 방이었습니다. 동시에 프라이버시라는 말은 곧 사치인
공간이었습니다. 방과 방 사이는 매우 가까웠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도 좁혀준 건지 많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 친구 2명과 페루 친구와는 단짝이 됐습니다. 배가 경유 도시에 잠깐 정박했을 때 함께 맥주를 마시다 배를 놓칠 뻔한 적도 있습니다. 기타를 가져온 아저씨가 튕기는 “more than words”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며 언어의 단절을 메우기도 했습니다. 옆자리 미혼모와 그 옆자리 청년이 둘째 날부터 새벽에 같은 해먹을 쓴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3박 4일의 뱃길은 인연의 밀물과 썰물로 기억됩니다. 짧지만 뜻깊은 만남이 밀물처럼 들어왔고 헤어짐으로 썰물처럼 빠졌습니다. 여운과 함께. 그 빈자리는 또 다른 만남의 밀물로 채워지고. 밀물과 썰물의 연속이었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만남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만약 독립된 방에서 지냈다면 결코 겪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먹 같은 열린 공간이 있어 가능했던 추억입니다. 비록 해먹의 밤은 강바람으로 추워 잠을 설쳤지만, 해먹이 만들어 준 인연은 무엇보다도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