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아지트

슈필라움을 그리다

by 오은아



2020.06.08.Ea

슈필라움(Spielraum, 주체적 공간)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지금까지 우리는 '슈필라움'의 가치를 너무나 무시하고 살아왔다.

공간이 있으면 '슈필라움'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비싼 인테리어 가구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슈필라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렸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다.


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프롤로그 중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씨의 대다수의 책을 사랑하지만 근래에 읽은 이 책을 사랑한다.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그의 슈필라움을 독일에서부터 끄집어내어 한국으로 옮겨 설명하고 그 설명을 일단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 사랑의 이유다.

그의 '미역창고'와 나의 '읽다익다'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되뇌었는데 여기서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실존의 공간.


책방이 줄곧 사랑방에 비유될 때면 그 말을 꺼내는 이들의 좋은 의도를 모르는 것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반기의 언어들이 툭툭 올라오곤 했다. 그저 좋고 그저 따뜻하기만 한 공간에 한정 짓는 말 같아서. 내가 그리는 궁극의 세계에 반도 못 미치는 말'이다.

여유공간, 문화공간, 힐링공간을 넘어 "창조"라는 말이 깃들어야 하고 결국에는 물리적으로 그 창조가 "발현"되는 곳이기를 원한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라는 그의 말이 옳다.

여기서(읽다익다 책방) 각자의 정체성을 만드는 시간이 창조되고 있으므로.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 Henri Lefebvre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문화 연구 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 그동안 '시간 time'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 space'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 spatialturn'이라고 부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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