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누구예요?

누구 엄마 OOO

by 오은아

자신은 없고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에 사는 어떤 여자만 있다.

몇 살 먹은 큰 아이와 곧 수험생이 될 걱정이 많은 두 아이 엄마만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었는데

자신을 뺀 나머지 것들로 자신을 이야기하느라 퍽 장황하게 에너지를 빼고들 산다.


최진석 교수님 책을 좋아한다. 이 분이 쓰신 책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으로 살라는 메시지인데 자꾸만 나를 잊을 때 강력한 어퍼컷 역할을 해주는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책이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모임에 처음 오신 분들은 간단한 인사말을 부탁드린다. 자신이 누구이고 이 독서모임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오셨는지 어떤 걸 기대하고 본인의 변화의 의지가 얼만큼인지 간단한 인사말로도 대략 그분의 심중이 파악된다.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30,40,50대 여성분들이 주축 멤버이다. 물론 남성 참여자도 계시고 나이대 스펙트럼도 큰 편이지만 여하튼 내 또래 선생님들이 많은 편이다. 나이가 적지 않으니 자신에 대한 탐구나 자기 소통의 시간도 길거라 생각하지만 의외의 시간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한 번은 작정을 하고 자신에 대한 스피치를 프로그램 초입 부분 제법 시간을 할애하여 진행한 적이 있다. 책은 데미안이었고 우리도 밖과 타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데미안을 찾을 여정을 하려면 현지니 내가 누구인지부터 탐색해 들어가는 것이 수순이었다.


자신의 설명에 취약하다는 말은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 생각으로 살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그리고 그 외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로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얘기의 반증이 되겠다.

자신이 사는 동네와 나이, 가족 소개를 마치고는 머뭇거리며 말을 찾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하는 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문제로 (나는 누구인가? 어떤 인간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쪼개진 기능적 목표가 아니라 단 한 번 사는 이 세상에서의 지향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정할 건가...) 뭐 이런 물음들이 들이닥치며 어느 한 대 목도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힘들어했던 때가 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요량으로 30대 후반 책방을 시작했으니 우리 모두의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책이 거울 작용을 한다. 자신을 비춰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앉았는데 거울에 자신이 비치지 않는 거다. 누구 엄마만 덩그러니 있고, 직장 직원으로 있고, 타인이 부르는 이름으로 있고, 남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나가 있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붕어빵 틀 속에 한치도 벗어남 없는 답답한 기능인으로 있고 하고 싶은 거 참고 미래만 그리다가 실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잊어버린 채 사는 이가 거울 속에 우두커니 있을 뿐이다.


선생님은 무얼 좋아하세요? 뭐가 하고 싶으세요? 무슨 음식이 좋으세요? 뭐 할 때 가장 마음이 행복하세요? 10년 뒤엔 무얼 하며 살고 싶으세요? 그 미래를 위해 지금하고 있는 것들은요?

이런 질문에는 항상 이제 갓 말을 시작하는 아이처럼 아주 어설픈 말을 내거나 내지 못한 말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들이 다수의 현실이다.


이런 걸 건드리는 책을 한 번씩 일정하게 모임에 넣는 편이다.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것, 바르게 사랑하는 것, 건강하게 사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좋은 엄마도 있고 이 사회가 원하는 역할 감당도 될 것이니 나는 그 문제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책과 마주하는 모임에서는 눈물바람도 제법 많다.


뭘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어요.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차피 안될 거라 생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그런 고백이 눈물과 함께 쏟아진다.


내 몽뚱아리를 데리고 사는 내가 "나"라고 의심 없이 살아온 시간에 갑자기 의심이 생겨버린다. 적잖이 당황하며 급조된 언어를 쌓아 올리지만 자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과 이내 만나진다.


어디 살고, 누구 엄마고, 우리 남편은 어떤 일을 하고, 혹은 자신은 어떤 일을 하는 누구일 뿐, 정말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는 말이 빈다. 모두 잊은 것 같이. 한 번도 그 생각은 안 하고 산 것 같이. 그것도 아니면... 이것이 자신이라고 철떡 같이 믿고 있었던 장식 같은 것들이 이제와 생각하니 자신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린 것처럼. 자신의 언어가 비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거기 있고 남들이 좋아하는 게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인 줄 착각하면서 거기 있고 끊임없이 자식과 남편의 좋아하는 것에 맞추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변한 줄 알고 살았던 것처럼 아직 거기 있다.


이리로 건너오라는 말을 거는 일, 그것이 책방지기인 내가 할 일 중 하나이지 싶다.


책방 9년, 나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쓴 생존 독서를 통해 나도 이제 조금씩 영글어 가는 내 언어를 만나고 있다.


아직 자신의 데미안을 찾지 못한 채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말 걸고 싶다.


당신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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