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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죽당 Jul 10. 2020

시작부터 실패

Born to be loser (自卑)

  다섯 중에 중간에 낀 딸로 태어난 나는 엄마로부터 입버릇처럼 둘째 언니가 아들이었다면 는 낳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이 갓 태어난 나를 차가운 방 윗목에서 죽어버려도 상관없는 실패작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또 딸 낳은 죄인으로 멀건 미역국 한 그릇도 못 얻어먹고 나는 빈 젖을 빨다 밀가루 미음으로 목숨을 겨우 보존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쓸모없는 계집 아이라 백일 사진 하나 돌사진 하나 남은 게 없고 번듯한 남동생은 보란 듯 화려했던 백일이, 축복받는 한 살 돌이 사진으로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크고 힘센 큰언니, 손재주가 뛰어나고 예뻤던 둘째 언니, 훤칠하고 잘생긴 남동생들과는 달리 나는 작고 볼품없으며 여름에는 더위에 쉬이 쭈그러지고 겨울에는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이 건조해지고 터져서 피가 스며 나와 피가 엉겨 붙은 양말과 신발을 쩍쩍 끌기 일수였다. 잘하는 게 없어서 매일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그러다 보니 공부만은 형제들 중에 가장 잘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역시 멋진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외국어로는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스무 살쯤에 외국 유학을 꿈꿨고 그래서 떠난 십 년 타국 생활 로도 나의 외국어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여름 장마철 모기장 속 같았다. 그러고도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포기할까 괴로워하고 또 계속하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끔 학생들이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외국어를 잘하시냐고 물으면 난 속으로 네가 나의 길고도 간난 했던 외국어 루저 시절을 모르니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그저 웃는다.  누구라도 나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포기하지 않는 다면 외국어는  반드시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무렵 이번에는 영어가 너무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른 캐나다 길이 이십 년 가까이 건너지 못하는 강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처음 캐나다로 왔을 때 살기 좋은 날씨와 환경 대신에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니며 중국어를 가르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갖고 온 옷이 없어서 남들이 버린 옷을 주워 입고 파마 한번 못한 깍둑 머리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교통비도 안 되는 돈을 벌어도 나는 내 삶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겨울밤 눈이 푹푹 빠지는 산 위 부잣집에 튜터를 하러 갈 때도 나는 그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소중했다. 나에게는 정말 큰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도 아닌 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칠 수 있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낮밤을 가르지 않고 가르치고 그러고도 집에 돌아와 늦은 밤까지 전화로 그날의 공부를 회화를 통해 연습시켰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꽤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중국어 하나로 밴쿠버를 들썩이는 사람 그게 어떤 학부형이 내게 한 표현이었다. 학생이 백 명이 넘어가면서 나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회사 차리는 법 이란 책 한 권 읽고 시작 한 회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정말 너무나도 무능했다. 회사 재정. 인력관리, 시스템 정비, 홍보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그 길고도 긴 겨울을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힘든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내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패 투성이 루저...

 

 오늘도 난 실패를 끌어안고 열심히 살고 있다. 오랜 실패가 상장처럼 안겨와 어느샌가 하나둘 큰 의미가 되었다. 나는 이제 두 개의 세계를 그들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삶의 터전을 일구어내었으며 어여쁜 두 아이를 새 생명으로 이 세상에 떳떳이 내놓았다. 이제 다가오는 미래에 어떤 도전을 통해 어떤 실패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 실패의 길이 곧 성공의 길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러니 세상의 많은 루저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본다 나 같은 루저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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