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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곰 Aug 14. 2024

교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곳

  5학년 5반, 후관 4층 오른쪽 맨 구석 교실, 문을 연다. 스무 평 정도 되는 교실에 작은 책상들이 줄지어 있다. 내 자리의 컴퓨터를 켠다. 바탕화면 속 아이들이 환하게 반겨준다. 모니터 오른쪽 모서리에는 우진이가 곱게 접어준 빨간 카네이션이 붙어있다. 책상에는 다인이가 그려준 내 모습이 보인다. 단정하게 반으로 묶은 머리에 평소 즐겨하던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다. 하늘거리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반달눈으로 밝게 웃고 있는 ‘그림 속 나’는 ‘거울 속 나’보다 훨씬 젊고 예쁘다.


  칠판 꼭대기에 올려 둔 봉투 속에는 타임캡슐이 들어있다. 우리 반이 처음 만난 날, 1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었다.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마지막 날에 다 같이 열기로 약속했다. 창틀 먼지를 닦으며 하루를 준비한다. 아이들이 하나둘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이곳은 아이들과 내가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 교실이다.


  수학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러다 하품하는 현준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칠판에 새로운 문제를 적었다.


  “이것 맞히면 학급 칭찬 세 개!”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연필심이 종이에 미끄러지는 소리만 사각사각 들렸다. 민수가 손을 높이 들더니 어깨를 펴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아이들은 두 손을 모으고 문제를 푸는 친구의 뒷모습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민수는 고개를 몇 번 갸웃하더니 답을 적어냈다. 내가 “정답!”이라고 외치자,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팀이 골을 넣은 듯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학급 칭찬이 다 모였다. 이번에는 앉은뱅이 피구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힘을 합쳐 책상을 모두 벽에 붙였다. 순식간에 교실은 놀이터가 되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교실 바닥에 둘러앉아 공기놀이하고 있었다. 나는 모두 잘 놀고 있는지 살폈다. 그런데 수연이는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수연이에게 다가갔다.


  “수연이는 책을 좋아하는구나. 친구들이랑 공기놀이도 해 볼래?” 앞에 있는 빈 의자에 앉으며 내가 물었다.

  “저는 할 줄 몰라요.” 아이가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이리 와 봐. 선생님이 가르쳐 줄게. 쉬워.” 나는 수연이의 손을 잡고 아이들 옆에 가 앉았다.

  “우리도 끼워줘.” 수연이는 나랑 한 팀이 되어 규칙을 익혔다. 한참 놀다 보니 종이 울렸다.

  “공기 사서 집에서 연습할래요.” 수연이가 동그란 눈으로 또렷하게 말했다.


  종업식 날이었다. 출근하는데 교실 앞이 북적거렸다. 졸업하는 제자들이 인사를 온 것이었다. “너희들이 이렇게 커서 졸업을 한다니 정말 축하해.” 나는 졸업생과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교실 안을 슬쩍 곁눈질해 보니 깜깜했다.


  “선생님, 애들이 숨어있는 것 같아요.”

  “응, 너희 후배들이 몰래 준비했나 봐. 잘 속아 볼게.”


  교실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아이들이 벽에 몸을 붙이고 숨어있었다. 칠판에는 각자 쓴 편지를 함께 모은 판이 붙어있었다. 나 몰래 쓰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나도 모르는 척 연기 좀 했다. 의자에 앉으니 책상 아래 숨어있던 인규가 튀어나왔다. 놀라서 뒤로 나자빠지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종업식은 방송으로 할 예정이었다. 나는 전근 인사를 해야 했다. TV를 켜놓고 방송실로 내려갔다. 내가 다른 학교로 간다는 소식을 학생들은 화면으로 알게 되었다. 교실로 올라오니 숙연해진 아이들로 공기가 무거웠다.


  2주 뒤, 짐을 싸러 교실에 왔다. 텅 빈 교실이 차가웠다. 교실을 정리한 후, 묵직해진 상자를 들고 빈 교정에 섰다. ‘꿈이 자라는 교실’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보였다. 교실은 학생들의 꿈만 자라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곳이다. 종업식 날 꺼내 본 타임캡슐에는 아이들의 손바닥이 그려져 있었었다. 저마다 자기 손을 맞대어보고는 1년 사이 많이 자랐다며 신기해했다. 교실에 들어서면 내 마음은 매해 넓어진다. 아이들 앞에 서면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지는 것이다. 졸업하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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