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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곰 Aug 17. 2024

요술 연필

 5학년 5반 17번 박용석, 학기 초 진단평가에서 기준 미달인 학생이 우리 반에 있다. 그것도 국어, 수학 전부 해당하고 전교에서 가장 낮은 한자리 점수이다. 내가 이 아이의 담임이 된 것은 처음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교육 복지 업무를 맡은 나는 용석이가 1학년 때 난타 공연에 데려갔었다. 여 남은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명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었는데 걷는 내내 그의 손을 잡고 다녔었다. 뮤지컬을 보고 학교에 도착하니 깜깜해 여러 학부모님들이 마중 나오셨다. 그런데 용석이는 아무도 나오지 않아 언덕배기에 있는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가 2학년일 적에는 옆 반이어서 오가다 봤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녀석을 붙잡고 한글을 열심히 가르치셨다. 그런데 5학년이 된 지금도 용석이는 우리말이 서툴다. 그는 베트남인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두 살배기 동생과 산다. 아버지는 한국인이지만 60세가 넘으셨고 가장으로서 바쁘시다. 요즘엔 학교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공지 사항과 통신문을 발송한다. 보호자 동의서에 회신이 없어 아버지께 전화하면 신세 한탄부터 하셨다. 30분 후, 내는 그런 건 모릅니,라는 말과 함께 통화는 끝이 났다.


  용석이는 방과 후에 남아 교실에서 나와 함께 공부를 한다. 혼자만 늦게 가서 싫을 텐데 한 번도 도망간 적이 없다. 늘 바르게 앉아 기다린다. 초코파이와 주스를 꺼내 주면 괜찮다고 사양한다. 체육을 해서 땀을 뻘뻘 흘리는 그에게 시원하니 마시라며 주스에 빨대를 꽂아 건넨다. 그러면 그제야 수줍어하며 단숨에 들이켠다. 음악 선생님께서 다음 주까지 단소를 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녀석은 끈질기게 안 가져올 게 뻔하다. 내 숙제나 준비물은 괜찮지만, 다른 선생님의 수업에 부담을 드리면 안 된다. 나는 미리 이번 학기에 필요한 준비물을 모두 사뒀다. 리코더, 단소, 자, 각도기, 영어 공책, 반에서 함께 읽기로 정한 도서 5권 등을 그의 책상에 놓았다. 집에 가져가면 보나 마나 제때 못 가져올 것이다. 나는 지금 친구들이 없으니, 사물함에 넣어두라고 했다.


  받아쓰기 숙제부터 검사하니 역시 깨끗하다. 한글이 문제다. 특히 받침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속도도 느리지만 알아듣기 어렵다. 애국가 가사를 ‘도돈해무뭉가 배배두사사미 마마르고 다닥도로’로 읽는다. 매주 검사하는 글쓰기 공책을 보면 암호문 같다. 시험지에 적은 답도 한참을 봐야 무엇을 적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일 국어 시간에는 소리 내 읽으며 놀이하기로 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푹 빠진 게임이다. 교과서의 글을 읽다가 틀리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읽는다. 그렇게 주어진 글을 우리 반 전체 한 바퀴를 돌 때까지 끝까지 다 읽으면 학급 칭찬을 받는다. 오늘은 실패했다.


  녀석은 자기 차례가 오자 실수로 발음이 꼬인 척 연기를 했다. 친구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하는 용석이를 보았다. 용석이와 내일 진도의 맨 앞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녹음도 해 틀린 부분을 고쳐가며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다음 날 처음으로 읽을 사람을 제비로 정할 때 아이들 몰래 뽑은 이름이 아닌 용석이를 호명했다. 그는 보란 듯이 첫 줄을 매끄럽게 읽어 내려갔다. 오 박용석 대단한데! 선생님, 용석이 많이 늘었어요! , 하며 아이들이 그를 치켜세웠다. 우리 둘은 무언의 눈짓을 보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곧 학급 대항 티볼 대회가 있다. 용석이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 장래 희망이 축구 선수이고 모든 구기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나는 그런 용석이에게 코치를 맡겼다. 5개 반이 리그전으로 치르는 대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그는 아이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공격과 수비 라인을 정했다. 그리고 회의 시간에 선수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 앞에 나와 설파했다.


  ‘공을 보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날아오는 공을 무섭다고 피하지 않는다. 수비하면서 땅을 파지 않는다.’ 등의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부릅뜬 두 눈으로 직접 시범을 보이며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열정에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가 있던 날 나는 마트에서 감귤주스를 사 갔다. 웬 주스냐는 아이들에게 이건 ‘트로피’라고 했다. 리본, 색종이, 스티커로 꾸며 우리만의 트로피를 만들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그의 전술은 적중했다. 적재적소의 선수들이 코치의 지시를 따르며 각자 위치에서 기량을 뽐냈다. 다른 반 선생님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상대편도 만만치 않았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인데 우리 반은 8 대 10으로 지고 있었다. 주자가 2명인 중요한 순간, 용석이가 마지막 타자였다. 심판의 신호에 그는 유연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고무공은 새총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수비수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포물선을 그렸다. 공을 따라 모두의 고개가 젖혀지고 시선이 고요하게 구름 아래 작은 점을 향하더니 뒤편 화단으로 일제히 내리 꽂혔다. 홈런이다. 우리 반은 환호성을 지르며 용석이에게 달려들어 다 같이 얼싸안았다. 교장 선생님께서 수여하시는 주스 트로피를 반 대표로 용석이가 받았다. 그는 두 손으로 하늘 높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시리즈 우승보다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몇 달 후, 빈 교실에 앉아 수행평가 채점을 했다. 인상 깊게 읽은 책과 그 이유를 적는 문항이 있었다. 매주 학교 도서관에 가면 도서 분류 기호순으로 골고루 책을 읽도록 한다. 하지만 용석이는 늘 하드커버의 동화책을 읽는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나 ‘아기 돼지 삼 형제’ 같은 책 말이다. 그런 녀석이 무엇을 적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적은 책 제목은 ‘요술 연필’, 그 이유는 ‘나도 고부 장하고 시퍼서요.’라고 쓰여 있는 것이었다. 늘 웃고만 있어서 몰랐었다. 그도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바보같이 짐작도 못 했었다. 아마 감히 잘하고 싶어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티도 못 냈을 것이다. 시험을 못 봐도 다른 아이들처럼 속상해할 수도, 안타까워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글씨에서 느껴져 눈물이 쏟아졌다. 미안한 마음이 여울지니 시험지도 얼룩져갔다.


  생각해 보니 다른 부진아와 달리 그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모둠 활동을 할 때도 모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아이들이 착해서 맞춰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온 신경을 집중해 자신만의 전략과 생존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물어보면 늘 그 문장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용석아 이 문장 읽어 볼래?"

  "아 이 문장을 읽어보라고요?"

  "응 크게 읽어봐."

  "아 크게 읽어 보라고요?"와 같은 식이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깊고 진한 두 눈을 끔뻑거리며 끈기 있고 차분한 태도로 말하는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이제 알겠다. 그것은 그가 나의 말을 이해하려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었다. 상점 직원의 간단한 영어도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때면 나 자신이 너무도 작아졌었다. 어디를 가나 의식적으로 귀를 열고 있어야 해 피곤했다. 우리 반에서 누구보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수업받는 학생은 다름 아닌 용석이었다.


  아이들은 악기 수업으로 우쿨렐레를 배운다. 나도 맨 뒤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강사분께서 앞줄부터 지난번에 배운 코드를 체크하시겠단다. 큰일 났다. 코드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순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내 차례까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곁눈질로 아이들의 손가락 위치를 훔쳐봤다. 그러다 용석이와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동공이 나와 같았다. 나는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너도 요술 연필 찾고 있니? 선생님도 필요한데 보이질 않네. 그래, 이까짓 우쿨렐레 모르면 어떠냐, 어차피 내일 되면 또 까먹을 텐데. 혼나면 어떠냐, 같이 혼나면 낫잖아. 괜찮아, 넌 혼자가 아니야. 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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