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부지곰 Aug 21. 2024

잘 왔어, 정민아

 “김 선생님, 저 좀 잠깐 뵐 수 있을까요?” 교감 선생님은 회의실 앞에서 나를 기다린 눈치였다. 교감님을 따라 복도 끝으로 갔다. “혹시 작년에 가르쳤던 김정민 학생 기억하시나요?” 당연하다. 정민이는 작은 체구에 재주 많고, 늘 에너지가 샘솟는 아이였다. 때론 엉뚱하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에 웃을 때가 많았다. 가끔 지각하고 1교시 수업 중에 올 때가 있긴 했다. 복도에서 누군가 서성거리는 기척이 느껴지면, 나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살짝 나가봤다. 아이는 엄마 때문에 늦었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우리 정민이, 왜 안 오나 걱정했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하며 달랬다.

  “엄마는 제가 없었으면 좋겠대요. 저 같은 건 이 세상에 필요 없나 봐요.”라며 그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었다.

  “그럴 리가. 어머니께서 실수하셨네. 정민이가 있어서 선생님은 얼마나 좋은데. 아주 속상했을 텐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하며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주면 들썩이던 윗등이 잠잠해지곤 했다.


  교감 선생님의 질문 후, 그 짧은 몇 초 동안 정민이와의 장면이 내 머릿속을 휙 지나갔다. 밝고 귀여운 학생이었고, 가끔 지각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답하고는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여쭈었다. 그런데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정민이가 며칠 전에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작년에 5학년 2반이었던 김정민이 맞는지 몇 차례 확인했다.


  며칠 전에 교무실 앞에서 정민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에게 잘 지내는지 의례적으로 물었었다. 밝은 표정을 문제없다는 의미로 판단하고는 대답을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오늘 아침 일일 업무 계획에 적혀 있던 ‘생명 존중 교육’에 대한 안내도 주기적인 필수 교육으로만 받아들였다. 요즘 들어 부쩍 강조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작년에는 특이 사항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시고는 교감선생님은 회의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회의 내내 멍하게 앉아있었다.


  주말에도 정민이의 귀여운 얼굴이 계속 맴돌았다. 어떻게든 작년의 정민이로 되돌리고 싶었다. 이제 곧 여름방학이다. 부모님께서 일을 하셔서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아지면 더 위험할 텐데… 걱정이었다. 자신은 쓸모없는 아이라고 내게 뱉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번 일도 그래서 벌어진 것 같았다. 조용히 앉아 1년 전의 정민이를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봤다.


  국어 시간에 또랑또랑하고 실감 나는 연기로 책을 읽던 그 목소리에 우리는 감탄했었다.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불렀던지, 누구보다 애교도 철철 흘렀었다. 문득 정민이가 돌봄 교실에 있는 동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몸집이 동급생들 사이에서는 약점일 수도 있지만, 저학년 학생들과 친해지기에는 오히려 강점일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 역할을 주면 자아 효능감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정민이의 다정다감한 성격에 딱 알맞은 일을 찾았다는 생각에 휴일의 무례함을 무릅쓰고 교감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내게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며, 교장선생님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마음으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교실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앞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학생이 가방을 멘 채 헉헉거리며 서 있었다. 바로 정민이였다. 마침 녀석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정민이 교실은 앞 건물이고, 우리 반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정민이를 반겼다. 그리고 아이들 눈을 피해 교사 연구실로 데려갔다. 잘 지냈냐는 안부에 정민이는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같은 반 친구가 자기를 괴롭히는데, 어느 날에는 계단 구석으로 자기를 몰더니 손 날로 목울대를 치면서 “너 같은 새끼는 죽어버려야 해.”라고 말했다고 했다. “세상에나, 그런 나쁜 새끼가 있어? 누가 누구 보고 죽으래?” 처음 들어보는 나의 욕에 정민이는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친구의 말에 속상해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몇몇 아이들이 모여서 쟤는 우리 반이 아니면 좋겠다, 고 수군거리는 것을 문밖에서 엿들었다고 했다.


  나는 정민이가 언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 그리고 교내에서 시도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싸가지없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어? 선생님 같았으면 당장 주먹을 날렸을 텐데”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그러고는 처음 남에게 꺼내 보이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선생님도 반 아이들 전체가 있던 단체 대화방에서 내 욕을 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단다. 두 명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남겼었고, 나머지 학생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지.”

  “선생님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정말 속상하고 억울했겠어요.” 녀석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응, 화도 나고 수치스러워서 펑펑 울었지. 다음 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부어서 학교에 못 갔을 정도였으니까. 어른이었던 선생님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넌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어. 이유 없이 내 욕을 한 그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고, 잠자코 있던 아이들이 같은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정민아, 네 잘못이 아니야. 걔가 나쁜 거야. 그리고 너희 반 아이들이 모두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야.”

  “맞아요, 저도 친구가 있어요.” 정민이는 몇몇의 이름을 댔다.

  “거봐. 정민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작년에 네 덕분에 얼마나 재밌었는데… 네가 책 읽을 때마다 애들이 다 칭찬했던 것 기억나지? 모둠 발표할 때나, 연극 수업에서도 네 연기 짱이었잖아. 민요도 멋들어지게 불러서 애들이 네 노래에 앞으로 다 같이 나와 덩실덩실 어깨 춤췄을 때 진짜 신났어.”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기억나요. 그때 진짜 좋았어요.” 드디어 내가 알던 정민이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월요일 아침부터 너를 보니 기분이 좋네. 매일 보면 좋을 텐데 아쉽다. 그런데 이번 방학에는 뭐 하니?”


  방과 후 컴퓨터 수업을 듣는 것 말고는 별 계획이 없다는 말에 돌봄 교실 봉사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단박에 하고 싶다고 했다. 정민이가 자기 교실로 돌아간 후, 교무실에 인터폰을 했다. 교감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참 잘 되었다고, 부모님께서 동의하시면 담당 선생님과 일정을 조정해 본다고 하셨다.


  개학 후, 정민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 교무실부터 들렀다. 방학 동안 주 3회 봉사를 성실하게 잘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줄을 서서 이동하던 정민이는 나와 우연히 마주치면 덩치 큰 6학년 학생들 틈에서 두 발로 강실강실 점프하며 손을 높이 흔들었다. 그런 녀석의 밝은 표정을 보고서야 나는 안도했다.


  그 뒤로 정민이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별일 없다는 의미일 테니 다행이었다. 지금도 안경 너머 빛나는 눈망울로 군중 속에서 나를 향하던 그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학창 시절에 생을 놓아버리고 싶던 적이 있었다. 상처받은 어린 내게는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그 한 명이 너무도 절실했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이 어릴 적 상처로 오열하던 반항아 ‘윌’(맷 데이먼)을 따듯하게 안아주며 반복하던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라는 대사는 내게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겠노라고.


  정민이에게 내가 ‘숀’ 교수와 같은 존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정민이에게 잘 왔다고, 너로 인해 내 마음속 오랜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전 02화 요술 연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