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zerland Tour
여행을 다녀와서 두 달 반 만에 다섯 명이 다시 모여 앉았다. 글 쓰는 동안 그들의 응원 덕분에, 진짜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떠난 여행인 만큼, 함께 갈무리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은, 현, 선, 희에게 물었다.
1.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장소나 장면을 3가지 고른다면?
2. 딱 한 곳을 골라 다시 간다면, 어디를 가실라오?
3. 여행 기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고비였다고 생각되는 시점과 그 이유는?
4. 최애 샷으로 꼽을 수 있는 사진을 3장 이상 고른다면?
5.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6. 23편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7. 다음에도 함께 여행하시겠소? 그렇다면, 어디를 가고 싶소?
8. 다시금 스위스를 간다면, 꼬옥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은?
9. 이번 여행의 만족도를 %로 표현한다면?
질문 하나에 답 하나씩을 기대했으나, 봇물 터지 듯 이야기가 쏟아진다.
맛있는 음식은 샤모니 레스토랑의 저녁 식사였는데, 역시나 우연히 들린 목장 옆 레스토랑에 먹은 스테이크가 탑 오브 탑이란다. 의견 일치!
첫 날 저녁, 빈터투어에서의 저녁 식사도 그날의 맥주도 맛있었다는데 동의!
여행지 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는 건 너무 어렵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마음이 모이는 곳은 체르마트였다. 마터호른을 바라보면서 걸었던 그날의 풍경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또 걷고 싶단다. 체르마트에서 2박 3일 이상 머물면서, 여기저기 더 많이 걸어 보고 싶단다.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걷고 싶다는 의견도 나온다. 알프스를 다시 천천히 두 발로 걸으면서 즐기고 싶다는데 의견 일치!! 그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상관없단다. 알프스가 마음에 쏙 들었단다.
고비라 여길 만한 타이밍은 생각 안 난다고 한다. 다만, 체력적으로 따라가지 못해 민폐가 될까 봐 열심히 약 챙겨 먹고, 잠자려고 애썼다는 희. 여행 말미에서야 시차 적응된 듯 아침 산책을 나서지 못했던 선, 모두들 본인의 체력에 대한 걱정 외엔 별 기억이 없단다.
도시는 인스브루크가 기억에 남는다는 희, 마터호른은 일몰이 멋있다는 말에, 일출이 훨 장엄하다고 안 봤으면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고 밀어붙이는 선. 브레망에서 바라본 몽블랑이 좋았다는 현, 마터호른 5 호수 하이킹이 너무 좋았다는 은, 모두들 어디든 다시 가고 싶단다. 스위스도 좋고, 스페인도 좋고. 하지만, 모두들 아직은 스위스에 빠져 있다. 많이 좋았나 보다. 나도 나도!
현은 고민 없이 세 장을 골라준다.
에귀 디 미디에서 바라본 몽블랑이 아니라, 건너편 브레방 쪽에서 바라본 알프스 사진을 두 장이다.
거닐고 있는 쪽의 초록과 맞은편의 하양이 절묘하게 어울리고, 마음마저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그날 그곳의 시원한 바람이 전해지는 것 같다.
하늘이 흐려 살짝 아쉬웠다는 돌로미티. 사진 속 풍경엔 구름, 산, 나무, 호수가 멋지게 층을 이루고 있다. 파란 하늘이었다면 사진이 더 환하게 나왔겠지만, 비구름의 묵직함이 산을 눌러주는 듯한 기운도 좋다.
희는 두 번에 세 장씩, 총 여섯 장을 골랐다.
아침 산책을 나섰던 인스브루크가 참 좋았단다. 빨간 트랩이 예스러운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희도 역시나 브레방 쪽에 찍은 사진을 원 픽. 하늘도 산도 초록도 그 사이 사람도 참 조화롭다.
여행 내내 우리의 관용어구가 된 '흔한 스위스 풍경'. 초록 위에 소가 노니는 장면 참 많이 봤다. 그 흔한 풍경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탔더랬다. 흔해서 좋은 초록 풍경이다.
희가 고른 사진 중 한 장은 체르마트 시내에서 바라본 마터호른이다. 5 호수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와 맥주 한잔 마셨을 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물, 참 기운차게도 흐른다.
모두들 초록 위에서 즐기는 하얀 알프스가 좋았나 보다. 희는 브레방 쪽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 더 골라 주었다. 알프스 삼매경에 빠진 동생들이 귀여웠나 보다.
오, 몽트뢰의 석양이여. 숙소 베란다에서 찍었나 보다. 그날의 붉은 햇살이 지금도 얼굴에 닿는 듯하다.
은이 고른 세 장의 사진은 모두 마터호른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마터호른을 바라보고 있을 은의 모습이 그려진다.
호수에 비친 마터호른 산군, 멋지다.
하이킹 중에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얼기설기 돌탑이 만들어지고 있다. 제일 위 작은 돌 하나는 은의 솜씨가 아닐까 한다.
체르마트로 돌아와 해 질 녘 마터호른을 보기 위해 저녁 마실을 나왔더랬다. 마터호른 위에 떠 있는 초승달이 얼른 또 만나자고 은을 유혹한다.
선은 여행 내내 사진에 진심이었다. 예술 혼을 불사르겠노라는 강한 의지는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뿜뿜이었다. 퓌센에서 성 구경은 뒷전이고, 고슴도치랑 그 일당들을 줄 세워 놓고, 희와 함께 예술 중이다.
융프라우 정상을 배경으로 장품을 날리는 선, 그 순간 날아가는 은. 작품을 찍는다.
끝내 주게 파란 하늘 아래서 마터호른을 바라보면서 먹는 점심. 배경으로 황홀한데 음식마저 진짜 맛있다. 또 먹고 싶어 진다. 그 메뉴를 그곳에서. 아, 선의 초이스는 사진 속 저 맥주였을까?
선이 체르마트에서 네 사람에게 같은 포즈를 주문하면서 찍어 준 사진. 환하게 웃는 순간을 포착해 낸 선의 기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의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선도 브레방에서의 사진을 하나 골랐다. 선이 고른 것은 희의 뒷모습. 짧은 고독의 맛깔스러움이 묻어난다.
역시 선답게 5 호수 하이킹을 골랐다. 또 걷고 싶단다. 알프스 여기저기를 튼튼한 두 발로 걷겠노라 호언장담한다.
사진을 정리하다 서너 장의 사진은 어디서 찍은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은이 운전하는 동안 조수석에서 잠깐 찍은 것인지, 다른 사람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인지 모르겠다. 호숫가와 포도밭이라면 레만 호수 쪽일 수도 있겠다.
'어느 호숫가 누군가의 포도밭'으로 남겨 두련다. 선명한 것도 흐릿한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니.
올 한 해를 '스위스'랑 산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좋았다.
이렇게 우리의 스위스 여행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