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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그레이 Jun 01. 2022

내 인생 첫 경험, 신경정신과 진료

육아 우울증, 혼자 참아낼 문제가 아니었다.

 동네에 신경정신과가 두 곳이나 생겼다.

'뭐 이렇게 신경정신과가 많이 생겨? 그렇게 찾는 사람이 많아졌나? 동네에.. 가는 사람이 있으려나?


 토요일 오전,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엘리베이터에서 신경정신과 층을 누르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8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동네 신경정신과를 내가 방문했다. 그렇게 설문지를 받아 들고 항목을 체크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나는 무엇을 상상한 것일까..? 진료가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너무 평온해 보이고 말끔하고 말짱? 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을 끓이고 있구나.. 대단히 이상해서 오는 곳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선입견을 한 겹 덜어냈다.


 사실 고민 끝에 먼저 신경정신과를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너무 열심히 살고 늘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는데 일에서 온 스트레스였는지 너무 스스로를 바로잡아 온 탓인지 정신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무너져서 거부감이 들지만 상담을 다녀왔고, 우울증 수치가 꽤 높아 약 처방을 받아왔다. 이틀을 먹고는 어지럼증과 울렁대는 부작용으로,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인정할 수 없는 약물 복용으로 혼자 해내 보겠다고 했다. 갑자기 너무도 서글프게 울기도 하고 괜찮아져서 으쌰 으쌰 해보기도 하고.. 도돌이표인 친구를 보며 너무 거부감 갖지 말고 약을 복용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얘기도 했었다. 조언을 하면서도 '나라면 약물 복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괜히 떨려왔다. 물론 전문가이시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가시겠지만 내가 어떤 마음인지 왜 그런 마음인지에 대한 대답은 내가 가지고 있기에 결국 내가 나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를 다독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고, 체한 것 같으면 소화제를 먹듯이.. 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지금 당장 털어 넣고 싶을 만큼 마음이 쿵쾅.. 아니 쾅쾅거렸다. 마음속 이 화가 우르르 몰려 나가지 못해 서로 나가겠다며 들썩이고 있었다. 그 화의 피해자는 일주일 내내 다섯 살 첫째 아들이었다.

 우리 아이만 그런 줄 알았지만 육아 동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운 네 살 보다도 더 독립된 자아와 자세한 언어 구사력을 가지고 엄마를 네 살 때 보다 한 층 더 힘들게 하는 다섯 살이었다. 게다가 타인보다 민감한 아들이었다. 조금 더 섬세하게 마음을 들어주고 반응을 살펴주길 바라는데.. 비집고 들어오는 동생이 있다. 아들의 스트레스도 이해하지만 두 아이가 동시에 달려들 때.. 동시에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내가 이 아이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거들어줘야 할 때, 나는.. 꽤나 큰 압박을 느꼈다. 내 팔이 그나마 두 개라 겨우 두 아이를 안아줄 수는 있지만 내 몸은 하나이고, 어떤 우선순위로 이 모든 일을 끝내야 할지 마음이 엉크러지고 복잡해지면서 숨이 막힌다.


  진료실에서는 생각보다 편하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나의 이야기를 술술 하고 있었다. 5살, 3살 두 아이.. 둘 다 아들.. 이야기만 듣고도 "어휴 힘드시겠네요"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찔끔 나려 했지만 눈물 펑펑 흘리며 상담받고 싶지 않아 늘 그러했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죽음.. 과 같은 나쁜 생각도 해보셨냐는 말에…

창피한 마음인지, 부끄러운 마음인지.. 내 목소리는 아주 작고 조심스럽다. 용기가 없어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아이들 재울 때, 너무너무 무기력할 때, 나의 죽음 후 남을 남편과 아이들, 나의 부모, 친구들.. 그리고 나의 장례식에서의 우리 아이들 모습을 망상과도 같이 생각해본 적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때  나의 현실과 상황을 모두 바꾸고 피하고 싶을 때에도, 나아갈 해결방안이 아닌 다 끊어낼 죽음을 상상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죽음뿐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죽지 않고도 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의사는 나에게 3개월 정도 항우울제를 복용할 것을 권했다. ‘결국 약물치료인가? 그냥 바로 이렇게 제안해버리는 건가?’라고 생각이 들 때 의사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약물치료를 권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우선 나는 지금 육아로 지친 상태 같은데 아이들은 계속 엄마가 필요하듯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 상태가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살에 대한 충동성을 막기 위해 의사들은 약물치료를 권한다고 한다.

어떤 방법이든 내 마음을 치료하고 내 정신을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약물치료를 권유받으니 뭔지 모르게 두렵고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었다. 이제와 친구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느껴졌다. 약을 복용하는 게 두렵진 않았다. 약으로 조절이 된다면 감기약 먹듯 두통약먹듯 복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 때문에 금단현상이나 부작용, 의존성들이 두려웠던 것 같다. 의사는 수면제 말고 중독성이 크지는 않으며 3개월 복용 후 괜찮아지면 중단하고 잘 지내다 마음이 어려워지면 다시 복용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타이밍과 컨디션이 너무도 좋았고 선순환 중이었다. 토요일 상담 후 미용실 예약까지 내 시간을 갖기로 했고, 일주일 뒤 혼자만의 여행을 결정했으며 숙박까지 예약해 확정된 상태였다. 운동을 매일 가기 시작하고 실천한 한 주였고,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 등원 후 점심까지 먹고 하원해서 낮잠으로 이어져 내 시간이 늘어나 있었다. 첫째, 둘째 모두 코감기로 어린이집에서 일찍 하원한 후 낮잠을 건너뛰며 짜증과 놀이를 독점해야 했던 일주일 전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 상태라 이 정도면 약물치료 없이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시 반복될 걸 알기에 용기를 내 보았다. 철 들어가는 십 대 자녀를 둔 것도 아니고, 생리 전 증후군도 심한데 3주 뒤면 또 반복될 것을 알기에 치료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정신과 약물치료가 시작되었다.

처방약을 받고 2주 뒤 상담을 예약하고 나오는데 상담하러 갈 때만큼 기분이 이상했다. 게다가 신경안정제는 너무 화가 나거나 불안하거나 등등 내 감정이 격해졌을 때 복용하라고 했으니 내가 나를 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둘, 나만 하는 육아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영유아 시기를 거치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힘든 시기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가 극복하고 버티고 즐겼던 순간들을 꺼내어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까지 올 줄 몰랐지만 더더욱 앞으로 나의 변화와 내 마음에 대해 들여다보고 풀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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