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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그레이 Jun 01. 2022

첫 항우울제 복용

호르몬, 내가 아닌 나의 존재

상담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첫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상담받으러 갈 때부터 반신반의였다. 지금 당장 뭐라도 복용해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던 일주일 전과 달리 상황이 너무도 좋아졌고, 왜 항상 선은 선을 부르고 악은 악을 부르는지.. 악순환인 일주일 전에 비해 선순환 중이었기에 지금 약을 복용한다고 이게 약 효과일까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상담 후 미용실을 거쳐 반나절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두 아이들을 만났다.

아빠랑 신나게 노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첫째 아들, 자다 깬 둘째 아들 한 명씩 안고서 전시회 마지막 날 티켓을 들고 인파 속 줄을 섰다. 공간 디자인에 대한 전시였는데 조금 어두워지니 둘째는 무서웠던지 형에 비해 순둥이라 생각하며 키우고 있었는데 입장과 동시에 찡찡대서 나의 발걸음을 재촉시켰다. 전시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눈으로 훑어보면 몇 분 안에도 다 볼 수 있도 있지만 작품 하나하나, 공간 속 나의 느낌과 작가의 의도도 매치해보면 감상하는 것. 아이 둘 안고 아직 우리에겐 사치인 공간이었다. 그래 우리 주제에 무슨 전시야.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동동대며 아이들 케어를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보채는 아이들에게 화살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 왔다. 그래서 해결책이 필요해 보였다. 이렇게 시작된 생각과 감정은 더 깊이, 더 어둡게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말 못 하는 17개월 아이가 처음으로 평소보다 어두운 낯선 곳에 들어와서 무서웠나 보다. 나 무섭다고 표현하고 있었나 보다. 잠 제대로 못 잔 우리 큰 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며 아이들 마음을 살피고 있었고, 안아주며 토닥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요즈음의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에너지 넘치는 첫째는 잘 시간이 다 되어서도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하지 말라는 행동은 일부러 한 번 더 하는 듯 엄마 아빠 보란 듯이 짓궂게 장난을 쳤다. 금요일 아이들 하원 후 일요일까지 나의 머릿속만큼 집안 곳곳은 손댈 시간조차 없이 지저분하다. 평일 두 아이 어린이집 간 사이 깔끔하게 정돈된 집과는 다르게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면 정리할 시간과 힘조차 나지 않고 모두에게 주말은 일에서 손을 떼고 쉬고 싶듯이 나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싶다. 마음을 내려놓고 그런 집안 분위기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처리할 힘과 마음은 없으면서 그 모양 자체가 내 마음에 너무 크고 날카로운 자극이었다. 식사시간 이후면 특히 더 그렇다. 아직은 차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첫째, 혼자 먹겠다며 조금씩 흘리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내뱉어 버리는 둘째. 초보 엄마 시절에도 식탁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치우며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엄마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 먹는 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 끼 안 먹는다고 죽거나 안 자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어쨌든 먹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기에 잘 키워내려는 마음인 걸까? 밥이라도 잘 먹는 날이면 얼마든지 식탁 아래에 기어들어가 흩어진 밥풀과 반찬들을 치우게 된다. 그런데 타인보다 민감한 첫째를 40개월까지 먹고 씹는 것에 적응시키기에 너무도 많은 날들을 울었다. 그런데 호르몬이 나를 조절하고 있나? 약을 처음 복용하고 난 첫날 저녁, 식탁 밑에 떨어진 반찬 조각들, 거실에 흩어진 장난감과 쌓여있는 설거지들을 보고도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숫가처럼 고요하게 찰랑댔다. 아니 그냥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터질 듯 생각이 많아 멍하게 잠기는 게 아니라 그냥 잠시 멈춘 듯 그렇게 더 나쁘지도 더 신나지도 않는 상태였다.


약물 부작용이나 금단현상 등 약물 복용에 대한 단점들을 물었을 때 의사가 이야기했다. “제 환자들 표현으로는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바쳐주는 그물망 같다고 해요.”

그냥 우울에 꼬리를 물고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게 잡아주는 정도인가 보다 상상했다. 그런데 정말 의사들이 정의하는 외부 자극이라는 스트레스로부터 나의 몸이 무뎌진 상태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뭐 어때서? 별일 아니라는 듯 넘기다 자연스럽게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을 찾은 것이다.  “남편, 신기해.. 이런 상황에서도 짜증 나지 않아..”

“그게 정상이야. 너 원래 그랬었어.”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며 정돈되지 않은 아이들 속에서 그 소리가 내 귀를 쿵쾅쿵쾅 건드리지 않아 신기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해 연기하는 것처럼 항우울제는 내 호르몬을 조정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전혀 다른 내가 나타난 게 아니었다. 어쩌면 그동안 목소리 높여 화내고 소리 지르면서도 더 내뱉지 못해 답답해하던 그 두 아이 엄마는 외부 자극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행복감을 느끼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을 잃어버린, 내가 모르는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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