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애쓴 시간들
올해 2월부터 ‘okay write slowly’라는 이름의 온라인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두 달간 매주 한 편씩 글을 완성하는 온라인 글쓰기는 1기를 시작으로 기수마다 10명에서 15명이 함께하며, 현재는 5기가 진행 중이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성현 님은 1기와 2기, 4기로 함께했다. 평소에도 꾸준히 글을 써 오셨지만 매주 한 편씩 글을 완성해야 하는 온라인 글쓰기는 성현 님에게 쉽지 않은 속도였다. 그럼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글을 쓰셨다. 온라인 글쓰기를 통해 성현 님의 글을 읽는 독자가 된 것이 좋았다. 언젠가 이 글들이 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난여름 성현 님이 공간에 와 조심스럽게 오케이 슬로울리에서 책을 펴내고 싶다는 말을 전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이런 날을 기다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예감한 듯 흔쾌히 수락한 후, 성현 님이 수년간 써 온 A4 78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메일로 받아 보았다.
원고를 읽기 전 터틀넥프레스 출판사 김보희 대표님이 쓴 『첫 책 만드는 법』(유유, 2023)을 먼저 읽었다. 초고 집필을 돕는 마감 방식부터 피드백하는 법, 첫 책을 준비할 때 챙겨야 할 사항 등 19년 동안 작가의 ‘첫 책’을 가장 많이 작업한 편집자가 전하는 세세한 이야기는 작가의 첫 책을 처음 맡게 된 주니어 편집자를 위한 일 잘하는 선배의 원 포인트 레슨 같았다. 덕분에 원고를 읽기에 앞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첫 책 만드는 법』을 읽고 성현 님의 초고를 출력해 읽으면서 에세이는 ‘한 사람의 삶을 읽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삶을 가장 먼저 읽는 독자이자 편집자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함께 찾아왔다. 초고를 읽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2교와 3교를 거쳐 최종교를 받고 나니 어느새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다. 달라진 계절만큼 바뀐 것이 있다면 성현 님과 나의 관계일 것이다. 한 북토크에서 진행을 맡았던 임경선 작가님은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를 ‘영혼이 맞닿아야 하는 사이’라고 표현하셨다. ‘내 글의 첫 독자이자 나의 글을 나보다 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현 님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는데, 작가님이 하셨던 말처럼 그동안 믿음과 신뢰가 많이 쌓여 전보다 관계가 두터워졌음을 느낀다.
최종교가 도착한 후 판형에 맞춰 인디자인 프로그램으로 한 편 한 편의 글을 편집했다. 가제였던 제목이 여러 제목 후보를 거쳐 최종 제목이 되었고, 그에 맞춰 3가지 표지 시안을 디자인했다. 그중 하나로 최종 표지 디자인이 결정되었고, 초판 발행일을 정하고 ISBN 코드를 발급받은 후 가제본을 발주했다. 가제본을 발주할 때만 해도 오탈자가 없다면 바로 최종 발주를 해도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금세 책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는데, 막상 가제본을 손에 쥐고 읽다 보니 수정할 부분이 계속해서 눈에 보인다. 서체 크기부터 행간 등 전체적인 수정이 필요한 곳도 있고 자잘한 오탈자도 보여 페이지마다 책 끝을 접어 표시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일은 가제본을 읽으며 서로 체크했던 부분을 대조해 수정할 부분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 제작부수와 인쇄 업체를 결정하고 발주하는 일이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제본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독자와 편집자, 교정자, 디자이너 중 나는 어느 위치에 가까울까.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 고민될 때도 있지만 나를 믿고 맡겨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수년간 써 온 글에 책이라는 집을 지어주는 일이니, 함께 애쓴 시간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지어 드리고 싶다.
(202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