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01.
2017년 1월 엄마가 되었다.
그림 그리는 엄마
완벽한 엄마, 모범적인 엄마는 자신 없지만 그림 그리는 엄마는 괜찮겠지.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모두 같겠지만, 엄마라고 육아를 제일 잘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여전히 그림 그리는 엄마로 아이와 잘 지내고 싶다. 그림도 그렇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지만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물론 그 범주가 작아진다 할지언정,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역시나 아니다. (사실 그림이라는 게 잘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에는 정답이 없기도 하고)
오래오래 그리고 싶다.
오래오래 그림을 그려도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연필을 끝까지 붙잡고 있고 싶다. 그 오랜 시간은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아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 마치 내가 사랑하는 작가 Dahlov Ipcar처럼 99세 할머니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그림을 그린 다는 건, 수만 가지의 이유를 다 지우고 여전히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직업과 일이 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의 꼬리가 길어져버렸다. 하지만 그 꼬리의 꼬리들을 따라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다면, 결국 다시 처음 그 마음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이 한 줄만 남게 되겠지.
늘 보던 선반을 어느 날 갑자기 그려보고 싶고, 산책을 하다가도, 즐거운 공연을 다녀와서도, 낯선 타국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그림을 그리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이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걱정을 조금 덜었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만 자동차나 흔히 말하는 '탈 것'에 대한 그림은 전혀 관심 없었는데 아니 단 한 번도 그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는데. 아이가 '빠방 사랑'에 입문하게 되자 어느새 나도 즐겨 그리게 되었고 이제는 중장비도 척척 그린다(물론 내 스타일로). 좋아하던 색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노란색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팔레트 제일 앞에 위풍당당 자리하게 되었다. 마치 꽤 오래전부터 늘 즐겨 쓰던 색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나는 몰랐지 내가 이렇게 많은 상어를 그리게 될 줄은... 엄마가 되면서 나를 잃어버릴까 늘 노심초사했는데, 엄마가 아닌 나에게 얻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나에게는 연필과 스케치북이 하나 더 생긴 샘이다.
30대가 되어 20대보다 더 좋고, 지금보다 40대가 더 기대되는 건 여전히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을 수십 년 동안 좋아서 계속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세계 제일만큼 큰 꿈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세계 제일보다 더 큰 꿈을 꾸어본다. 육아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