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원광여중 최승우 선생님
글을 써달라는 청탁은 고등학생 때부터 받았다. 친구 대신 써주는 연애편지. 본 적 없는 ‘그 오빠들’의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글을 써야 했다. 읽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싶던 내 취향을 철저히 버려야 했다. 그런데 막 웃기게만 썼다. 당연히 컵라면이나 떡볶이 1인분에 내 글을 팔던 시대는 금방 막을 내렸다.
그 정도의 시련을 겪으면 절필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자아성찰’이라는 동아리 덕분에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뭐라도 썼다. 학교 뒷동산에 올라서는 하늘과 대화하는 걸 썼고, 관에 들어간 체험을 하고 나서는 또 글을 썼다. 몇 년간 그랬다.
여름방학에는 화엄사에서부터 걸어서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고, 겨울에는 변산 바다에 입수한 뒤에 해변을 달렸다. 봄가을에도 시외버스와 군내버스를 갈아타고 닿는 산에 올랐다. 학교에서는 피구를 했고, 선배들한테 기합도 받았다. 그 모든 일은 너무나 젊고 근사한 최승우 선생님이 있어서 가능했다.
전남 영광 해룡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우리 선생님은 지금 익산 원광여중에서 근무하신다.
스승의 날, 원광여중에 진로 강연을 하러 갔다. 선생님이 근무하는 상담실로 먼저 갔다. 그 옛날 고등학교 상담실에서는 선생님이 끓여주는 라면을 많이 먹었는데 원광여중 학생들은 라면은 안 먹는 것 같았다. 다른 맛있는 게 있었고, 만화책도 많았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와서 우리 선생님한테 “승우샘”이라고 부른다.
선생님의 둘째 아들은 호주에서 셰프로 일하고, 늦둥이 아들은 둘째 형과 살면서 의학공부를 한다. 우리 아들이 군대 때문에 애먹는 것을 아는 선생님은 “제규 제대하면 학교 복학하기 전에 우리 둘째 있는 데로 보내라”고 했다.
우리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은 “원광여중 학생들은 진짜 기특하고 예쁜 학생들”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났다. “최승우 선생님 제자예요”라고 먼저 말했다. 강연을 듣는 학생들한테 먹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랬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제법 있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재밌었다.
강연 끝나고 선생님이랑 선생님 동료 선생님들이랑 밥 먹으러 나갔다. 원광여중 졸업하고 원광여고로 진학한 고등학생들이 선생님 뵈러 상담실 왔는데 어디 계시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수십 년 전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우리 고등학교 선배들도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다.
“제가 보니까 최승우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선생님이세요.”
같이 식사하는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을 부러워하며 말했다. 제자들은 마흔 살이 넘었어도, 쉰 살이 되어서도 선생님을 찾아온다. 선생님은 제자들이 철없는 소년소녀였을 때도, 중년의 아주머니 아저씨가 되었어도 귀를 열고 우리 얘기를 들어주신다. 뭐라도 주신다. 나는 친정에 온 딸처럼 선생님이 준 초콜릿, 껌, 원두커피, 방향제 등을 넙죽 받았다.
선생님과 우리 고등학교 제자들은 1년에 두 번씩 만나서 1박 2일간 지낸다. 수십 년째 이어온 모임이다. 나는 이번에는 빠지려고 했다. 리듬을 깨지 않고 쓰던 글을 마저 쓰려고 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선생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정말 똥멍청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