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없는 산골에서 자랐다. 교과서 이외의 책을 쌓아둔 집은 구경해본 적 없다. 나는 엄마가 할부로 사준 전집과 아랫집 삼촌의 국어 교과서를 가져다 읽었다. 방학 때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외가에 가서 다시 이모네 집에 갔다. 사촌동생이 손도 대지 않은 몇 질의 전집 때문에 계속 들락거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고등학생 되면서 친구 오빠한테 빌려 읽은 <데미안> 때문이었을까. 버스비와 떡볶이 사먹을 돈만 있어도 충분히 좋았던 세계를 깨부수기 위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언니나 엄마한테 계속 참고서 사야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돈을 타냈다. 거금을 들고 간 곳은 광주 충장로의 삼복서점. 공들여서 사온 책은 자매들과 같이 쓰는 책꽂이에 꽂았다.
스무 살 봄, 처음으로 군산 오룡동 하숙방에 나만의 책꽂이를 들였다. 그때는 이 작은 도시에도 서점이 많았다. 나는 녹두서점(한길문고의 옛 이름)에 다녔다.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을 사 모으고,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읽었다. “돈 부쳤씨야. 너무 애끼지 말고 써라이.” 엄마가 하숙집으로 전화를 하면, 곧바로 서점으로 갔다.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씩 책을 사는 사회인이 되어보지 못한 채로 결혼했다. <임신과 출산>, <달님 안녕>,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강아지똥> 등을 사면서 내가 읽을 책도 같이 골랐다. 사치가 아니라 생활이었다. 읽는 사람이었던 나는, 아기 키우고 밥벌이 하면서 읽고 쓰는 사람의 세계를 향해 한 발씩 내딛었다.
첫 책 <우리, 독립청춘>은 마흔 살 넘어서 펴냈다. 수도권에 사는 지인들은, 아는 사람이 책을 출간한 게 신기하다면서 대형서점 판매대에 누워있는 책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줬다. 얼마 안 가서 2쇄를 찍은 첫 책은 태평하게 계속 누워있지 못했다. 친구들은 서가 어디쯤에 꽂힌 책을 컴퓨터로 검색해서 찾았다고 했다.
한길문고에서는 달랐다. 내 책은 변함없이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탑처럼 쌓여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간절하게 빌기에 알맞은 높이라서 속으로 말하곤 했다. ‘꾸준히 팔리게 해주세요.’ 무명작가가 낸 책은 입고된 첫 달에 몇 백 권 팔렸다. 두 번째 책 <소년의 레시피>도 그랬다. 나한테 한길문고는 ‘무조건 먹고 들어가는’ 홈그라운드였다.
“지영!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이 있거든. 우리 함께 해볼까?”
2018년 10월,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가 말했다. 월급도 나오고, 4대 보험도 되는 서점의 상주작가는 작가 강연회를 기획하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된다고 했다. 뭔지 모르면서도 거절하지 않았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창훈 소설가는 연수회에서‘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지구역사상 처음 생긴 일이라고 했다. 어떤 것이든 해도 된다고, 창의적이고 매력적으로 해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서점을 재미있는 곳으로 여기길 바랐다. 어린이들이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1시간의 시급을 주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열었다. 팬티에 똥꼬가 끼어서 간질간질해도,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고 성공(?)한 독서는 특별한 무용담이었다. 시민들도 체면을 차리지 않고 졸랐다. “어른들도 엉덩이로 책 읽기 하고 싶어요!” 2019년 11월 네 번째로 열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에서는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하지 않고 100명이 해봤다.
꼭 만나고 싶었던 작가들을 섭외할 때는 사람들과 미리 책을 읽으면서 찍은 ‘떼샷’ 사진을 보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에세이 쓰기 수업을 열었다. 읽고 쓰는 사람들의 고민상담소, 200자 백일장, 디제이가 있는 서점, 북 캠프, 라면 먹고 갈래요?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뭍에 나와야 하는 어청도 분교 초등학생들이 작가를 처음 만난 곳은 한길문고였다. 내가 쓴 <소년의 레시피>를 읽은 중학생들은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자는 자세로 서점에 왔다. 오래 전에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 독서가인 청소년이, 좋아한다는 말을 책으로 대신하고 싶은 젊은이가 상주작가를 찾았다. 한길문고에 작가가 있다는 소식은 이 도시 곳곳에 퍼졌다.
동네서점에서 기획한 작가 강연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을 움직인 서울시민 권나윤씨는 벚꽃 피려면 아직 먼 2019년 11월에 군산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일상으로 돌아간 그녀는 <여행기 아니고 생활기예요>라는 책을 써서 출간작가가 되었다. 우연히 공항에서 <소년의 레시피>를 구입해 읽게 된 도쿄시민 기쿠치 미유키씨는 한길문고까지 찾아와서 책을 샀다. 군산여행 코스에 한길문고를 넣는 사람들도 생겼다.
어린이부터 칠십 대까지의 독자들이 동네서점에서 보낸 특별한 시간을, 나는‘상주작가의 서점에세이’로 기록했다. 작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야기, 액션이나 스릴도 없는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겠나.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했다. ‘읽는 나’와 ‘쓰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한길문고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니까.
올해 2월 18일, 내가 투고한 서점에세이를 읽은 새움출판사 편집장님은 ‘2020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에 응모해 보라고 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출판제작지원금과 저작상금 1,000만 원을 출판사와 작가에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 마감은 정확히 일주일 뒤였다. 조사해 보니까 전년도 경쟁률도 수십 대 일이었다. 나는 원고를 보냈다.
5월 20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02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다. 대개 보험이나 스마트폰 교체를 권유하는 전화라서 안 받는데 그날은 “여보세요”를 하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 상대방은 내 이름을 정확하게 말했다. 나도 늘 꺼내서 쓰는 말을 할 참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바쁘다고.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얘기하고 나서 축하한다고 했다. 헐! 씨름 왕 출신인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환상의 동네서점>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상주작가의 서점에세이가 ‘2020 우수출판콘텐츠’선정작이 되었다고 했다.
올해 내가 펴낼 책은 두 권이었다. 6월에는 <내 꿈은 조퇴>라는 동화집을, 7월에는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이라는 인문지리서를. 출간할 책이 세 권으로 늘어나니까 조바심이 앞섰다. 책이라는 물건은 쓴 사람도 나서서 팔아야 하는 상품인데,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새움출판사 편집장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저는 이 책이 팔릴 것인가. 그게 걱정이에요. 독자층을 모르겠어요.”
“한길문고만의 이야기지만, 책을 좋아하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동네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울림이라면, 추가 원고 쓰면서도 느꼈다. 스무 살부터 다닌 서점에서 상주작가로 일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한길문고 이야기를 쓰게 되다니. 무엇보다도 2012년 여름에 10만 권의 책과 완전히 침수되었던 한길문고가 다시 일어나 사랑받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출판사에서 <환상의 동네서점> 표지를 보내준 날에는 눈물이 툭 터지고 말았다. 특유의 느린 말투로 “잘 혔어”라고 해주셨을, 돌아가신 한길문고 이민우 대표님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은 9월 22까지 세상에 나와야 했다. 서점에세이를 읽은 당진시립중앙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2회 강연을 요청했더랬다. 마지막 강연은 9월 24일에 당진서점에서. 꾸준히 읽어온 당진 독자들의 눈은 반짝였다. 군산의 독자들처럼 ‘사인이 취미’라는 내 말에 호응해주고, 갓 펴낸 책 <환상의 동네서점>에 사인을 받아갔다.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 저녁. 한길문고에는 손님이 많았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용돈을 타온 우리 둘째아이는 문구 코너의 큐브들을 보며 홀린 듯 서 있었다. 나는 새로 바뀐 베스트셀러 목록 앞에서 붙박이옷장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새로 바뀐 베스트셀러 목록을 뚫어져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