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지지리도 공부를 못하던 학생 때 일이다. 좋아하는 교수님의 점심시간 동선을 알고 있었다. 교직원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에 학생 회관 뒤 나무 그늘에서 잠깐 서 있고는 하셨다. 날마다 나는 학생회관 3층에서 몰래 지켜봤다.
교수님이 인문대학으로 가시면 돗자리를 갖고 내려가서 딱 그 나무 그늘에 앉았다. 당연히 나는 나무에 교수님 이름을 붙여서 000나무라고 불렀다.
“그리운 환상의 동네서점 한길문고. 문학나눔 선정 축하드려요!”
12월 31일, 한길문고에 커다란 뱅갈고무나무가 배달되었다. 서점은 그날 엄청 바빴고, 나무를 받은 한길문고 직원 정민씨는 나한테 전화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모르는데요!” 명탐정 코난 만화책을 아직도 사보는 나를 믿어서일까? 한길문고 문지영 언니는 설명 없이 뱅갈나무 사진을 내 카톡으로 보냈다. 범인(?)을 밝혀내길 바랐겠지.
오늘 뱅갈고무나무를 보낸 사람이 자백했다. 그는 2019년 11월에 군산에서 한 달 살았고, 2020년 6월에는 군산에 왜 갔고, 뭐 했고, 뭐 먹었는지를 <여행기 아니고 생활기예요>라는 책으로 펴낸 권나윤 작가님이었다. 정말 실망했다. 군산 오고 싶어도 성숙하게 잘 참아내는 줄 알았더니만, 그걸 못 견디고 사치를 해야 쓰겠나.
한길문고의 책 10만 권이 물에 잠겼던 2012년 수해. 절망의 폐허에서 건져낸 게 어린왕자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소중한 어린왕자 옆에는 이제 군산 한길문고를 너무나 사랑하는 서울시민이 보낸 ‘권나윤 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