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래

by 배지영
20210110_185745.jpg



제규나 강썬님이 어른 되어서도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뭐 해보고 싶다고 하면 강동지와 나는 “그래!”라고 한다.

강썬님은 작년에 볼링, 3D펜, 큐브에 심취했다. 4개월간 날마다 20게임 넘게 치던 볼링은 코로나 핑계를 대며 그만뒀고, 3D펜은 재료를 몽땅 사달라고 하더니 몇 달 못 가서 시들해졌다. 큐브는 여전히 유튜브로 게임 보면서도, 온라인 학습 하면서도 하고 있다.

강썬님의 큐브 구매 내역을 제대로 점검한 건 지난해 12월. 어린이날이니까, 생일이니까, 월드챔피언이 쓰는 거니까, 솔빙이 탁월하니까, 이모가 용돈 줬으니까 같은 이유를 들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으면 내가 결제한 목록들. 1년에 200여만 원어치나 샀다(한 개에 10만 원 넘는 것도 있고, 오일, 기록 재는 기계, 큐브전용가방도 포함). 학원비 대신 쓰는 거라지만, 너무 심했다.

“강썬아, 큐브 이제 그만 사. 엄마 정신 차릴 거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싫어. 나는 이대로가 좋아.”
“왜?”
“정신 차리면 큐브 못 사잖아.”

강썬님은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보름이 지난 오늘 아침,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강썬님은 큐브 중고 사이트에 케이스까지 완벽하게 있는 몇 만 원짜리를 2,000원에 내놓았다. 거래는 빛의 속도로 성사됐다.

강동지가 적정가격이라는 걸 알려줬다. 4만 원짜리고, 거의 새 거면 1만 원은 받으라고, 2천 원에 팔려면 차라리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냥 주라고. 거래하고 싶다는 사람과 이미 문자를 수 차례 주고받은 강썬님은 약속 못 지키면 어떡하느냐고 엉엉 울었다.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0원에 파시는 건가요?”
“아 네.”
“제품의 상태는 어떤가요? 싸게 파셔가지고.”
“얼마 안 썼어요. 큐브 케이스랑 다 있어요.”
“풀박스인가요? 윤활 같은 건 하셨나요?”
“윤활은 타키온 2도포 했다가 거의 다 풀렸어요.”

그리하여 내일 강썬님은 생애 최초로 우체국에 가서 부산광역시로 택배를 보낸다. 인생의 좋은 경험일랑가. 다른 방법이 없다.


** 사진은 강썬님이 현재 가장 아끼는 큐브. 배지현 이모가 크리스마스에 5만 원 주고, 아빠가 3만 원 보탠 걸로 샀다고는 하지만 결제는 늘 그렇듯이 내 계좌에서 했다. **

#큐브
#중고거래
#인생의좋은경험
#됐고
#그냥나만정신차리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권나윤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