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여름이었다. 그룹 ‘신화’ 공연을 보고 도쿄로 돌아가던 기쿠치 미유키 씨는 인천국제공항 서점에서 <소년의 레시피>를 샀다. 도쿄 한국대사관의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 다니는 미유키 씨는 <소년의 레시피>를 틈틈이 일본어로 번역했다. 덕분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미유키 씨는 배지영 작가가 신간 낼 때마다 교보문고 페덱스로 한국어 공부하는 친구들 것까지 꽤 많이 샀다(배지영 작가 책 전권을 갖고 있는 분들도 몇 명 있음). 그녀는 배지영 작가 사인본을 사느라 한길문고 회원 가입까지 했다.
군산 방문 세 번째. 은파호수공원이나 일제강점기 역사가 남아 있는 원도심은 미유키 씨도 가본 곳. 이번에는 월명공원 ‘비밀의 편백 숲’이나 청암산에 같이 가려 했지만 비 올 확률 100퍼센트. 예술의 전당에 근무하는 김소영 계장님한테 공연이나 전시 있냐고 물어봤다. 없어요.
미유키 씨는 부산역에서 오전 6시 10분 KTX를 탔다. 오송역에서 환승해 8시 52분에 익산역 도착. 나보고 강썬님(중3, 패셔니스타) 학교 보내야 한다며 버스 타고 군산으로 오겠다 했다. 나는 시골 사람. 마중은 익산역으로 가야지요.
미유키 씨의 세 번째 군산 방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1. 임피역 - 화장실까지 국가등록문화재,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었음, 자세한 이야기는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에 나와요.ㅋㅋㅋㅋㅋㅋㅋㅋ
2. 빈해원 – 미유키 씨가 1박 2일에서 봤다며 가고 싶어 했음. 영업하는 식당이지만 국가등록문화재.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에 또! 도와주십쇼.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한길문고 – 내적으로만(과연?) 고래고래 소리 질러서 모르고들 계시겠지만 내 취미는 사인. 미유키 씨가 군산 오는 이유도 배지영 작가 사인본 구입. 이번에 미유키 씨는 내 선물뿐만 아니라 한길문고 문지영 사장님 선물까지 챙김(다정한 거 보소).
4. 시래기전문식당 올미 – 미유키 씨가 한 번도 안 먹어봤다는 민물새우탕을 먹기 위해 ‘뽕나무집’에 가려 했으나 예약 안 받음. 한길문고 가까운 식당 올미에서 식사. 강연 오시는 작가님들에게 추천하는 곳. 네! 맛있습니다.
5. 공감 선유 – 정원과 전시관과 카페를 겸한 곳. 토방에 앉아서 듣는 빗소리, 건물마다 전시 중인 작가님들 그림(류인하 작가님 작품 특히), 2년 연습했다는 어떤 중년이 연주한 피아노 곡 ‘잊혀진 계절’. 대숲 사이로 은은하게 파고드는 바람, 바다에 면해 있다가 논이 된 너른 들, 벙커 같은 공간으로 파고드는 빛,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눈빛 반짝이는 미유키 씨.
영화 <초속 5센티미터>에서 주인공들은 단 한 번의 키스로 “13년간 살아온 모든 것을 함께 나눠 가졌다고 느꼈”음. 공감 선유에서 미유키 씨와 나도 서로에게 닿는 것들이 많았음.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광주항쟁을 알게 된 미유키 씨에게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한길문고에 책이 없었음. 지금 와 생각하니 내 책이라도 드릴 걸. 14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한 덕분에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는 미유키 씨는 아름답습니다. 멋지고요.
6. 산들도서관 – 시간 없어서 다음으로.
7. 르클래식 – 나는 아인슈페너가 너무 간절했고, 미유키 씨는 배불러서 음료도 못 마심. 도쿄 집에서 드시라고 소금빵과 디저트를 선물할 수 있어서 기뻤음.
8. 익산역 – 시간에 쫓기듯 후다닥 헤어지는 게 좋음. 작별에 형식미가 더해지면 나는 눈물 콧물 쏟는 타입. 세 번 껴안고 기차 도착 15분 전에 헤어짐.
9. 도쿄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세종학당 – 미유키 씨는 군산 한길문고에서 구입한 배지영 작가의 <소년의 레시피> <환상의 동네서점>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세종학당 도서실에 기증함. 도서실장님이 사인본임을 확인하고는 아주 기뻐하셨다는 소식을 오늘 오후에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