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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by 배지영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절약가예요. 그중에서도 특히 장갑을 금송아지처럼 아낍니다. 무결석을 결심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3회 빠진 촛불집회에도 장갑 끼고 간 건 두 번뿐. 지난해 12월 초부터 지금까지 맨손으로 bts 응원봉과 피켓을 들고 있었어요. 손이 시려도 안 시렸습니다. 집에 가면 장갑이 있으니까요.


달리기하러 갈 때도 장갑은 집에 모셔뒀습니다. 어차피 뛰다 보면 덥고 그러면 겉옷도 벗고 목에 두른 것도 빼버리니까요. 왜 때문인지 손이 시리더라고요. 장갑 챙겨서 끼고 나간 날에 불길했습니다. ‘아무래도 나 장갑을 지키지 못할 것 같네.’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한길문고 에세이 6기 출판기념회를 한 토요일. 밤에 은파 나가서 달렸지요. 재밌더라고요. 왼발 세 번째 발톱이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어요. 집에 와서 보니까 양말에 피가. 그보다 더 놀랍고 분한 건 장갑 한 짝이 없어진 거예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몰라서 일요일 아침에 가봤더니 없어요. 없었어요!!!


장갑이 없는 삶.

시리고 아리고 서럽습니다. 월요일 저녁에 은파 뛰면서 확실히 알았어요. 화요일 저녁에는 실의에 빠져서 아예 달리지를 못하고요. 독서가 친구한테 말했더니 어차피 잃어버릴 장갑, 다이소 가서 사래요.


오늘 오후에 일 마치고 다이소로 갔지요. 손바닥이 찐덕찐덕한 장갑밖에 없는 거예요. 더 찾아봤더니 결혼식용 고급 장갑(흰 면장갑)과 원예 장갑.


절약가라고 왜 취향이 없겠어요. 체육인들의 옷과 장갑과 신발을 파는 전문점에 갔어요. 판매하는 분이 신상 장갑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절약가. 이월 상품으로 샀습니다. 그래도 제 책 수십 권을 팔아야 하는 돈이에요. ‘지각대장 존’처럼 다짐합니다.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은파호수공원에 장갑이 한 짝씩 굴러다니면 저한테 주세요. 사례는 못 해요.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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