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요리사

by 배지영


나 먹으려고 달걀 삶고 사과와 딸기 씻는다. 강성옥 씨가 해놓은 음식을 접시에 덜어 초밥집 같은 쟁반에 세팅해서 강썬님한테 바치기도 한다. 그 밖의 주방 활동은 없다. 없었다. 어제까지는.


오늘 오후에 퇴근하면서 양파와 토마토 샀다. 배지현 집에서 월계수 잎과 레몬즙을 얻었다. ‘두 가지 중에서 뭘 하지?’ 레몬즙 들어가는 요리는 처음 듣는 조미료도 있고 조리 과정도 복잡해 보였다. 긴장되어서 커피를 내려 마신 다음에 재료 두 가지만 손질해서 끓이는 스프로 정했다.

요리 유튜버는 양파를 썰었다. 나도 따라 하려는데 이미 그는 토마토 썰고 두꺼운 냄비를 꺼냈다. 정지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양파를 썰고(써는 방향이 틀렸다고 나중에 배지현이 알려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유튜버는 다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일단 정지. 스마트폰을 들고 내 방으로 갔다.


조리 과정을 글로 적어서 읽었다. 조금 안정이 된다. 순서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주방으로 가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뭐지? 유튜버의 도마는 참으로 청결해 보였다. 우리 집 도마도 지난해 12월에 산 거라 좋다. 근데 내가 신중하게 천천히 써는 바람에 토마토에서 나온 즙은 도마 위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유튜버는 약불에서 양파와 토마토를 4분 끓이라 하고 바로 다음 장면을 보여준다. 중불에서 3분, 뒤적이고 다시 약불에서 8분이라는 말만 하고 실제로는 몇 초마다 장면이 바뀐다. 고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쫌!


1시간 20분에 걸쳐서 양파 토마토 스프를 완성했다. 조리 과정 사진도 두 장밖에 못 찍었다. 유튜버의 스프는 새빨간 때깔이 강렬하고 먹음직스러웠다. 내 스프는 크레파스 아끼느라 살살 칠한 복숭아 빛이었다. 뭐 어릴 때부터 복숭아 맛 쿨피스 좋아했으니까 성공작이네.ㅋㅋㅋㅋ


“부엌이 왜 이래?”


강성옥 씨는 퇴근하자마자 물었다. 아니이, 한입 먹어봐도 돼? 그런 말 모릅니까.


배지현은 스프를 갖다 준다니까 사양했다. 건강에 좋은 거라며 두고두고 먹으라나 뭐라나. 강제규한테 사진부터 보내고 전화했더니 여자친구랑 바다 보러 가는 중. 고등학교 2학년 첫날을 보내고 온 강썬님한테는 어머니가 최초로 만든 양파 토마토 스프가 아예 없는 것처럼 치킨을 사다 드렸다.


지금 우리 집으로 많은 게 오고 있다. 제주도 구좌 당근 10kg과 대저 토마토 10kg과 웅장한 채칼과 스텐 가위형 집게와 홀그레인 머스타드. 요리 유튜버가 슥슥 양념통을 돌리는 게 근사해 보여서 흑후추 그라인더와 히말라야 핑크 소금 그라인더도 주문했다.


음식을 했는데 나눠 먹지를 못해서 고독한 밤. 당분간 나는 더 외롭고 더 높고 더 쓸쓸해지겠지.ㅋㅋ

#오늘의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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