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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안내자 옥돌 Feb 07. 2024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2023 회고 (24.01.07.)

딱 3시간 후면
호주에 다녀온 것도 벌써 재작년이다.

길지 않은 25년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준 여행은 맞지만, 호주와 발리 여행을 이야기할 때면 아직 과거에 매여 있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은 그곳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책을 쓰겠다 해놓고서는 아직도 묵혀두고 있는 다이어리의 짙은 파란색 커버가 아른거린다.

여행 중에는 어떻게든 매일 일기를 썼던 것 같은데 올해 언제부턴가는 주간 회고도 안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세계와 추억에 갇혀 있다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조차 포기해버렸다.

퇴사 후 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뭐 했어?”라고 누가 물어오면 “정말 아무 것도 안했어”가 그에 대한 답변이다. 본가에서 지내면서 눈을 뜨면 엄마 덕에 아침 식사를 하고, 뭐라도 해보겠다고 노트북을 펴고 앉아서 행복과 건강에 전혀 도움되지 않을 키워드를 검색해보다가 때가 되면 또 식사하고, 퇴근하는 아빠를 맞이하고. 이 세상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게 아까울 만큼 스스로가 한심했다.

지금 돌아보면 “왜 그래! 툭툭 털고 일어나. 평생 이러고 있을 건 아니잖아. 네 삶이 끝난 것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고.” 라고 다그치고 싶은데 그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상처주지 않기 위한 말들을 해본다.

뭐가 그렇게 미웠을까.


스스로에게 너무나 많은 실망을 했던 거야. 실망을 한다는 것은 기대와 이상의 간격이 크다는 건데, 그럼 나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지는 않았니? 그럼에도 가장 큰 후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약속한 기간을 다 채운다고 개운한 퇴사는 아니었다. ‘끝까지 내가 만족할 만큼 최선을 다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 사람은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듯이 말이다. 마음은 이미 붕뜬 상태로 겨우 시간만 채우고 나온 그곳에서는 아쉬움과 상처만 안고 나왔다. 그 다친 마음에 연고 바를 시간도 없이 또 소속 없을 불안감에 휩싸여 일을 벌리다가, 작아진 내 모습에 또 실망하고 두려워서 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 사이 아프다는 핑계로 다른 이들의 가슴을 할퀴었다. 고개를 들어 사과를 건네기도 미안한 얼굴들.

이제와서 그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 않다. 나를 탓하며 스스로를 미워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세 시간 후면 찾아올 내년을 위해 다짐 하나는 해두고 싶다.


무엇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라는 말은 커녕, 이보다 최선일 순 없어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힐 수 있을 만큼.


2024년은 조금 더 단단해져 보자.

아빠의 연말 응원처럼.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손 내밀어준 사람들에게 평생을 담은 감사를 보낸다.

힘든 상황에도 나에게 정신차리라며 자기 힘을 불어넣어준 OO, 기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쫑알쫑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준 OO, 부정적인 기운을 잔뜩 뿜어내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준 OO, 간간이 안부를 물어준 OO, 힘든 때를 어쩜 그렇게 잘 알고 손 내밀어준 OO, 이보다 더 할 수 있나 싶은 배려를 알려준 OO, 기운이 쭉 빠진 나를 구덩이 속에서 건져 올려준 OO, 세 달 동안 한집에서 미숙한 나를 품어준 OO과 OO, 천안아산역으로 가는 내내 자기 이야기로 나를 편안하게 해준 OO 언니, 밝은 에너지로 케미하우스를 밝혀주고 오랜만에 요가 수업을 다시 할 수 있게 도와준 OO, 우왕좌왕 얼레벌레 나를 잡아준 위기탈출 넘버원 울 OO, 새로운 도전을 무섭지 않게 이끌어주신 주짓수 관장님..

그리고 제일 고마운, 이렇게 약해빠진 딸의 모든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준 울 엄마 아빠. 그때는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너무 외롭고 힘들었는데. 혼잣말에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뼈에 사무치게 외로운 일이구나 느꼈는데. 이제와서 돌아보니 감사한 사람들이 참 많네. 잘해야겠다 정말. 타인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상처에 좀 더 세심한 눈과 귀를 열어야 겠다.

2024년은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기를.

떨리더라도 눈 꼭 감고 내질러보기를.


또 한 번 마음이 나앉고 싶다고 나약한 소리를 한다면 바삐 몸을 일으키고 땀을 흘려보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한 해가 될 거야. 네 안에서 외치는 그것을 하면 돼.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삶을 꾸려가고 싶은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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