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4.
환승은 다른 무언가로 갈아타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현재 있는 곳에서 하차해야 새로운 곳으로 몸을 실을 수 있죠. A와의 이별, 그리고 B로의 환승.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헤어지고 나면 이별을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실컷 슬퍼하고, 그 x x에게 욕도 해보고 체념했다가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 있잖아요.
그러나 환승의 귀재에게 이별을 애도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후딱후딱 잘도 갈아탔죠. 때로는 하차하기도 전에 환승할 노선을 일찍 탐색하기도 했어요. 만남에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요? 아니면 외로움을 달래려고 그저 그런 선택을 이어온 걸까요.
혹자는 변화가 두려워서 익숙함에 안주한다던데, 저는 젊음의 패기로 줄곧 환승을 택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보사에 3년을 바치고 열에 여덟이 언론인의 길을 갈 때,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겠다며 창업팀을 꾸렸고, 사회에 나와서는 한 회사에서 반 년을 못 버티고 새로운 곳을 기웃대곤 했습니다.
재미가 없어.
이 한 문장은 변덕스러운 선택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죠. 그 결과 언론인 꿈나무에서 창업팀 대표, 서비스 기획자, 커뮤니티 매니저... 난데없는 수식어들만 덕지덕지 갖게 되었네요.
또다시 이별을 앞두고 있습니다. 첫사랑은 아닌지라 덤덤하게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퇴사하면 뭐하지?
지난 퇴사 일기에는 ‘여행, 영어 공부, 통기타 연습하기, 영상 편집 배우기’ 같은 OOO 시도하기가 가득했었는데요. 이번은 좀 다릅니다.
‘방 정리하기’
‘안 입는 옷 정리하기’
‘노션 페이지 정리하기’
‘글감 정리하기’
..
실은, 머리맡 두 번째 서랍을 열면 아직 버리지 못한 전 연인의 편지가 한가득입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기가 두려워 정리하지 못하고 묻어둔 거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요.
숱한 이별과 환승 속에서 깜빡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정리’가 있다는 것을요. 이제는 서랍을 열어 과거의 선택들과 마주하고, “고마웠어, 잘 가”라고 말해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겐 헤어질 결심보다, 다음 노선을 타는 것보다, 정리할 용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더 이상 새롭게 들이기보다 ‘정리’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 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비워내고. 날 위한 선택을 시작할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대요. 정리 대장정을 마치고서도 어디로 환승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적어도, “이제, 환승할 준비가 됐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또 방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려고요.
“다 정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