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1.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한 번 본 책을 또 보는 일은 거의 없어 책을 구입하기 부담스러워졌다. 둘 공간도 없고, 돈도 돈이다. 이참에 책을 빌려서 읽을까 해서 (졸업한) 대학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방법을 찾아봤다. 졸업생 도서관 출입증 신청 방법은 의외로 정말 간단했다. 홈페이지에서 클릭 몇 번으로 신청이 끝났다. 신청비도 3000원밖에 들지 않았다. 대학 나온 보람이 있구나 이런 혜택도 있고! 하던 참에 문자가 날아왔다. ‘대외협력처에 5만원 이상 기부자 중 신청자에 한하여 도서대출 가능’. 이 문구가 얼마나 야속하던지, 금방까지 책을 빌릴 수 있어 감사했던게 너무 분했다. 아니, 이럴 거면 출입증 신청비를 53000원으로 받던가!
차선책으로, 근처에 있는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카운터로 직진해 도서대출카드를 만들러 왔다고 말했다. 안내원께 신분증을 건네드리고,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니 5분도 채 안되어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묘했다. 이렇게 쉽다고? 신청비도 없이 5권이나 빌릴 수 있어? 이보다 더 놀란 것은 서가 층으로 들어선 후였다. 자리는 책을 든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고, 사람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은퇴 후 평일 오후를 독서와 함께 즐기는 듯한 어르신, 문제집에 코를 박고 공부 중인 학생,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을 들어서는 아이들.. 첫 번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을 도서관을 찾고 있다는 점에, 두 번째는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있음에 놀라움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책 ‘고독의 시대'는 단순히 혼자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거나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을 때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칼졸업 칼취업, 그리고 이른 퇴사 후 무소속이 된 나는 한가로운 평일 오후, 믿었던 모교에게 도서관 출입증 신청을 거부당했을 때 퍽 외로웠다. 그러나 OO구민이라는 이유로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었을 때, 이름 모를 사람들 틈에서 그 공간을 향유할 때 나의 외로움은 낯선 소속감으로 채워졌다.
도서관의 위로처럼, 책을 빌리고 싶은 누군가의 외침을 들어줄 곳을 언젠가 직접 만들고 싶다. 낯선 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허구한 날 요가하고, 차 한 잔에 담소를 나누고, 폭신한 잠을 자고, 건강한 아침식사를 함께하는 공간. 아름다운 시설보다 사람 간의 연결이 끊이지 않는 그런 곳. 또 마을 만들기야? 하면서 덮었던 책 ‘커뮤니티 디자인'이 다시 재밌어질 줄이야.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창원에, 부산에, 용인에 있을 친구와 가족, 같은 건물에 살면서 따뜻한 인사가 어려웠던 이웃들, 지하철역에서 내 어깨를 치고 갈길이 바쁜 그가, 죽지 못해 버티고 있는 존재들이, 외로운 사회를 슬퍼하는 나 역시도. 신자유주의나 돌봄의 실패 같은 거창한 용어로 외로움을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너를 혼잣말로 두진 않을게. 문득 네 생각이 났다며 안부를 묻고, 서먹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생일을 축하하고, 이번 주말에는 같이 김밥을 만들자는 말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