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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n 24.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5.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한 분의 명예퇴임을 보았다. 30여 년 전, 처음 그 직장에 들어갔을 때 그분의 모습은 그리 호감을 주는 인상이 아니었다. 혈색 없는 피부와 가느다란 눈은 서늘한 느낌을 주었으며, 탁한 목소리까지 정이 가는 모습이라든지 좋은 이미지로 연상될 만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는 분이었다.



처음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결재를 올렸다. 그냥 놓고 가라고 하신다. 군 행정반에 있었으므로 기안문서 작성에는 크게 서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신규직원의 서류에 분명 잘못이 있을 것도 같은데 하며 뒤통수가 가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시선은 곁눈질로 그분의 책상에 가 있었다.


그분은 나의 안달 난 마음과는 달리 다른 결재서류들을 모두 처리하고 맨 나중에 내 결재서류를 펼쳤다. 무언가 고치는 듯싶더니 다른 직원들 서류는 불러서 결재서류를 건네주며 무어라 지시를 하면서 내 결재서류는 직접 가지고 면장님의 결재를 맡으러 가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그 서류에 큰 잘못이 있어 상급자에게 보고가 되어 크게 질책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밖으로 나와 연거푸 몇 대의 담배를 피워댔다.

잠시 후 그분의 부름을 받았다.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답답한 가슴은 방망이질해대고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직원들이 그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혼나는 것을 보아온 터이기에 신규 직원인 나의 두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뒤통수에 박히는 느낌이다.


"이건 이렇게 고치는 게 좋을 것 같고... 그리고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매끄러운 문맥이 될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수정 기안한 것이니 이대로 시행하면 되겠어. 아, 그리고 말이야! 자네 글씨를 잘 쓰는구먼. 가봐요"


연신 "예! 예!" 하다 자리로 돌아왔다. 잔뜩 혼날 거라는 생각에 긴장을 한 탓인지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느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담배를 뽑아 든 상태였다.


사무실 뒤쪽으로 나가 조금 전의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렇게 차갑게 느꼈던 그분의 행동이나 외모에서 풍기는 것과는 달리 이렇게 자상하다니. 얼마나 내가 외모만 보고 사람을 평가했는지, 또 다른 동료에게 말하는 그분의 외양에서 나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라든지,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듣는 것의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분의 외모는 그 후에도 나에게 호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분이 명예퇴직을 한다며 작별을 고했다. 퇴임식은 전 직원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분은 조용하고 갑작스럽게 자신의 25년 공직을 마무리했다. 평소 냉철한 판단과 꼼꼼한 일 처리로 상급기관에서까지 인정을 받던 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명퇴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분이 퇴임한 후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면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 텐데 하며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분의 일 처리에 대한 뒤늦은 평가였지만 사람은 떠나고 난 뒤 정확한 평가가 되곤 하는가 보다.


하루는 여직원이 그분을 상기시키며 "그분이 동삼 씨를 제일 좋아했는데... 그거 알아요?" 한다.

그분의 인상 때문에 대화도 많지 않은 편이었고 나를 아낀다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아마 다른 직원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가 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은 실수들은 묻어두고 좋은 것 잘하는 것을 들며 칭찬이 많았고, 하물며 선임 직원들 훈계할 때에도 신규 직원인 누구만큼만 하라는 질책을 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여직원의 그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니, 그런 분을 왜 나는 멀게만 느꼈을까?

처음 보고서 결재를 올렸던 때가 떠오르며, 불현듯 그분을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근무하는 기간 동안 그분께 커다란 잘못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어서이다. 어쩌면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죄스러워서일 것이다.


검은 장화를 신고 가축 분뇨를 치우고 계시던 그분은 정색을 하며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그러고 보니 이 분도 웃을 줄 아는구나. 처음 보는 환한 웃음이다. 축분 냄새가 심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이제 감옥 같은 속에서 벗어나니 사는 것 같다"며 연신 웃으며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느냐고 물으신다.

살면서 이처럼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하신다. 공직에 대한 미련도 없다신다.

그러면서 이곳 지나는 길에는 꼭 들러 냉수라도 한 모금 마시고 가라며 신신당부를 하신다. 공직에만 오래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것이 흠이란다.


그랬다. 그분은 이제야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내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두며 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보았다. 그분의 평화로운 모습을...

공직사회라는 곳이 소신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 느꼈기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할 바에야 진실한 흙과 함께 살겠다는 것이 그분의 명퇴 이유였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이처럼 평온해 보이는가 보다. 그분의 얼굴에서 과거의 그 냉철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래 그런 편한 분이었지만 나에게 그렇게 냉철하게 비친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상대방의 외모를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파악한 것으로 착각했던 그때의 일은 두고두고 생활에 귀감이 되는 사건이었다.


세상에는 점잖은 척하며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생각대로 묵묵히 일하는 자, 속내를 말하지 않으며 따뜻함을 실천하는 자 등 각각의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모습들을 우리는 얼마나 모순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단면을 보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아는 체하지는 않는가?


어쩌면 과일가게에서 냄새를 맡아보고 두드리고 요리조리 뜯어보며 수박을 고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지 모른다.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외모보다 내면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씩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때면 그 옛날 그분을 떠올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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