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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n 26.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6. IT 시대에 몽당연필로 세상을 그리다

문서 없는 회의를 한다며 태블릿 PC를 구입하며 요란을 떨었지만 태블릿 PC를 사 준들 뭐하나. 화면 띄워놓고 별도의 시나리오를 종이에 써와서 읽어 내리는 자도 있으니 시대를 앞서가기는커녕 따라가기도 버거운 모습들도 보인다. 

모든 결재가 전자결재 시스템으로 되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CEO 눈 앞에 자주 어른거리며 어필하기 위하여  문서를 출력하여 부속실을 기웃댄다. 

이것이 IT 시대를 사는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잘하고 있지만 늘 일부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당초 취지를 무색게 한다. 


책상 정리를 하다 작은 연필 토막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 쓰던 몽당연필이 생각나 볼펜 껍질을 잘라 연필을 끼워 깎아 보았다. 몽당연필. 요즘의 젊은 직원들이 보기나 해보았을까 싶은 앙증맞은 크기의 연필 토막이다. 


아이들은 어릴 때 늘 연필을 깎아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나의 모습을 곧잘 따라 하곤 했다. 몽당연필은 볼펜 껍질에 끼워서 쓰곤 했는데, 아이들은 그것이 그리 신기했던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늘 몽당연필을 달라고 하여 자랑스럽게 지니고 다녔었다. 

요즘이야 샤프연필 등 심만 갈아 끼우면 되는 연필들도 종류가 여럿 있고,  젊은이들은 곧바로 노트북이던지 핸드폰에 타이핑을 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있다. 



학창 시절의 연필들을 생각해 보았다. 50여 년 전 그 시절에도 여러 종류의 연필이 있었지만 샤프 연필이 등장하기 훨씬 전이었다. 연필에 적혀 있는 H와 B자를 보고 연필의 단단한 정도와 진한정도를 알 수 있다. B자앞에 있는 숫자가 클수록 진하여  4B는 미술용으로 샀던 기억이 난다. H자 앞에 숫자가 클수록 단단하고 흐려서 글씨를 쓰며 때때로 침을 발라 쓰곤 했다. 그때 초 종이에 싼 연필은 지금 생각해도 특이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난하느라 연필에 불을 붙여 호롱불을 끄고 연필 타 들어가는 것을 보며 좋아라 했다가 혼나기도 했던 그 당시 연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연필 중의 하나이다.  

칼질이 시원치 않아 연필을 깎다 가끔씩 손을 베는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삐뚤삐뚤하게 깎은 연필은 깎았다기보다 잡아 뜯은 것 같았다.


제법 쌀쌀한 공기가 찻잔 주위를 맴돌며 따끈한 차 한 모금이 고마움을 더해주는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연필을 깎는다. 책상 속의 다른 몽당연필들도 꺼내 가지런히 깎아 일렬로 늘어놓았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키 재기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육각의 반지르한 면이 평행으로 달리다 다시 비스듬히 내달아 시꺼먼 심 끄트머리에서 두 선이 하나로 모아져 마치 볼록렌즈를 통과한 빛이 한 군데로 모여 금방이라도 그 끝에 불길이 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녹차 향과 연필 향의 은근함을 코끝으로 느껴본다. 연필들의 가지런하고 적당히 뾰족한 모습을 눈으로 즐긴다. 오늘도 하루의 일이 잘 풀려가겠지 하는 기대를 해본다. 


흔한 샤프연필의 플라스틱 촉감은 끈적이고 미끈거려 불쾌한 느낌을 준다. 자동 연필깎이의 너무나 기계적인 면의 매끄러움은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손으로 잘 다듬은 연필의 적당히 각진 면의 손끝 촉감은 미끈거리지 않아 좋다. 면의 부드러움이 손 끝에 닿아 부드러운 느낌으로 손과 하나가 되어 술술 무엇이든 잘 써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작은 덩치가 한 편의 기사를 옮겨 세상을 놀라게도 하고,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변신하면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연필. 연필을 쥔 사람의 생각에 따라 훌륭한 거인도 되고, 하찮은 취급을 받으며 책상 속을 이리저리 글러다니다 책상 정리한답시고 휘둘러대는 우리네 손끝에 매달리어 쓰레기통 신세가 되기도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이라는 책에서 

"할머니는 네가 커서 이 연필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라고하며 연필의 다섯 가지 특징을 이야기 한다. 


연필은 곧 쥔 자의 뜻대로 의사표현을 하고, 더 예리한 의사전달을 위하여 쓰던걸 멈추고 깎아야 할 때도 있으며, 잘못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실수를 지우도록 지우개도 달려있고,   마음속에 귀를 기울여 써야 하며, 쓰인 것은 흔적이 남게 되니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즘같이 바쁘고 스피드를 강조하는 시대에 그까짓 연필을 쓰는 것은  시간낭비 아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조금의 여유를 갖고 연필을 깎으며 잠시 조금 전의 일들을 돌이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필.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 인간의 의사, 사고를 표현해주는 매개체로의 역할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줄어들고 있지만,  그의 역할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노벨 문학상을 꿈꾸며 몽당연필을 다부지게 움켜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연필의 특징을 되새기며 연필을 깎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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