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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n 29.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7. 구조조정, 니도 나처럼 돼 봐라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쾌변을 보고 난 뒤의 시원함이다. 이럴 때 술이라도 한잔한다면 맞춤이라는 생각이다. 잠시 수화기를 들고 오늘은 누구를 불러 자축을 할까 망설였다. 강적보다는 약한 놈과 붙어야 부담이 없다. 물론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식당에 나타난 친구는 머리 모습이 달라져 있다. 염색을 하여 20년은 젊게 보인다. 나이 마흔 중반에 머리가 온통 하야니 종종 오해도 있다며 흰머리가 늘 부담이 된다는 친구다.

 그 친구에게 세상 오염시킨다며 “생긴 대로 살지 그 나이에 뭘 그리 꾸미느냐!”라고 말하면

 “니도 나처럼 돼 봐라!”한다.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서 빗질을 했다. 옆으로 삐친 흰 머리카락이 빗질에 반항을 하며 뻣뻣이 선다. 유난히 거슬린다. 뽑는다고 조심스레 당겼지만 젖은 손을 빠져나가 머릿속으로 숨어버렸다. 자세히 보니 그것만이 아니다. 2,3년 전보다 앞이마가 2센티미터는 올라간 것 같다. 흔히 벗어진 머리를 빗대 머리 윗부위가 벗어지면 “소갈머리 없는 사람” 앞부위가 벗어지면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라 더니 내가 그 후자의 부류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런! 내가 친구에게 늘 악담을 해댔더니 이 꼴로 놀림을 당하려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 녀석을 불렀다. 바닥에 누워 머리 좀 뽑으라고 주문을 하고 눈을 감았다. 아들은 한참씩 머리를 고르고 족집게로 하나씩 뽑아낸다. 따끔따끔한 것이 머리를 긁고 싶은 충동이 인다. 머리카락은 이승의 끈을 놓는 표현을 이렇게 따갑게 하는가 보다. 어쩌면 마지막 발악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법 그 시간의 소요가 진지하게 느껴지는데 아들 녀석이 느닷없이 실실 대며 웃는다. 실수로 검은 머리를 한꺼번에 두 개씩이나 뽑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검은 머리 뽑힐 때는 좀 더 따가웠던 것 같기도 하다. 뽑아놓은 머리카락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동안 공직사회에 구조조정을 한다고 어떤 사람 어떤 사람을 대기발령 또는 면직 처리하였던 때가 기억난다. 

그중 남의 빚보증 서주고 그만둔 동료가 있었다. 보증 잘 서주는 사람 치고 악한 사람은 주변에서 보지를 못했다. 그저 모질지 못하고 정에 약해 보증을 서주다 그만두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암담한 심정이었을까?. 그 들 모두 공직 한 분야에서 제 몫의 역할을 다 했는데 단지 인원이 남으니 공직자로서 품위를 잃었다는 궁색한 규정을 만들어 내친 것이다. 


오늘 저녁 아들의 손에 의해 뽑힌 흰 머리카락이 그런 신세이다. 한때 두피를 태양으로부터 추위로부터 외부의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었거늘, 색깔이 변했다고 이리 매정하게 내 치다니. 

지금의 네가 나로 하여금 있는 것이거늘 어찌 이리도 매몰차단 말인가. 색깔이 변했다고 그 역할을 못하는 것도 아니건만 보기 흉하다고 뽑아버린다면 세상에 남아있을 놈이 어디 있겠는가?. 


뽑은 머리카락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악! 악! 거리는 항변의 목소리가 삿대질을 하며 멀어져 간다. 


“니도 나처럼 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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