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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n 18.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4. 여인의 공간, 장독대

   전통가옥 구조에서 보면 장독대는 집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들고 아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쿰쿰한 냄새가 밴 곳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장 신성한 곳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대소사를 치르기 전, 또는 자식이 군대를 간다거나, 가장이 멀리 출타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늦은 밤 촛불과 정안수 그리고 할머니의 두 손 합장은 장독대에서 성스런 의식을 치르는 모습이었다. 

소위 삼신할머니와 칠성님과 할머니를 도와주는 모든 신을 불러 세워 우환 소멸을 빌었고 가정의 무사 안위를 빌었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보살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머니께서 그 일을 맡은 내가 훨씬 성장한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런 의식은 수시로도 있었지만 초하루와 보름날 주로 행해졌다. 어머니께서 늦은 밤 목욕재계하시고 막사발에 정화수를 떠 장독대에 올려놓고, 양초 불을 밝혀 세우고는 혼잣말로 나직이 당신의 소원을 비셨다. 

그 시각 문틈으로 엿보긴 했어도 감히 그 성스런 행사를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다. 얼씬하지 못하도록 미리 일침을 놓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 탄다고…. 


그렇게 장독대는 할머니. 어머니의 소원을 비는 신성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1년을 양식할 고추장, 된장, 간장이 익어가는 곳으로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식품들을 자연 상태에서 보관하던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장은 우수를 전후하여 담그면 가장 맛이 좋다고 하여 이때가 되면 온 집안에 메주와 장 냄새가 진동을 하곤 했다. 요즘이야 담그기보다 시장에서 사 먹기를 즐겨하고 있지만, 그래도 노부모가 농촌에 계신 가정이라면 으레 그런 장류들은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된다. 

장이 그저 담가 놓는다고 맛이 날리는 없다. 한낮의 봄볕을 쬐도록 장독소래기를 열어두었다가 밤이면 닫아주고 흙먼지 튀었을까 물행주로 닦아주곤 한다. 늘 그런 모습은 흰 치마저고리 차림의 할머니 몫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할머니를 떠올리는데 장독대를 빼놓을 수가 없는가 보다. 


  한 가정의 안위와 집안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식은 굳이 절이나 성당, 교회를 가지 않더라도 집안에서 성스럽게 행해지던 곳이 바로 장독대였다. 우리 식품 중 가장 중요한 장을 보관하던 곳이기에 그곳을 신성히 여기며 그곳에 신들을 불러 세우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할머니·어머니는 집안의 내조자로서 밖에서 활동하는 지아비와 자식들을 위해 단순한 생활의 내조뿐 아니라 신성한 영역에서의 정신적 내조까지를 해왔는데, 그 의식의 장소가 장독대였으니 아파트 문화가 발달한 현시대는  집안에 신성 지역이 없어져 어쩌면 집안 안위를 빌어 볼 공간을 잃은 것 같다.


  언젠가 전원에 주택을 짓고 장독대를 만들고 사립문 빠끔히 열어놓고 아이들을 맞고 싶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정성을 그리며, 작은 장독대 주변에 채송화와 떡 비름을 심어놓고 된장냄새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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