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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n 12.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3. 우쭐했던 탈선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한 사건이 잊을만하면 방송된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근본대책이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러한 사회 문제는 늘  이삼일 뉴스를 타다가 정치권 뉴스에 밀려 다시 잠잠해진다.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언론이 잠잠하면 우리는 또 그 문제를 잊고 산다. 모든 게 해결된 듯.


  어린 시절, 남들보다 덩치도 작고 몸도 허약하여, 자주 얻어맞거나 놀림감이 되곤 하였었다.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왕따" 였던 것이다. 어느 날 대여섯 아이들의 뒤를 따라 큰길을 두고 산길로 접어들어 집으로 향했다. 혼자서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학교와 집 중간지점의 마을을 지나노라면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있어 혼자 다니다가는 학용품도 빼앗기고 이유 없이 얻어터지는 등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한 곳에 다다라 아이들은 길가의 무밭에서 대갈통만 한 무를 뽑아 잎을 뜯어 팽개치고 도랑물에 대충 씻었다. 그리곤 입으로 껍질을 벗겨 퉤! 퉤! 뱉어가며 우걱우걱 먹어대는 것이다. 남들 모두 무 서리하는 꼴을 멀찌감치 떨어져 쳐다보기만 했다.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던 시절이기에 무와 배추 밑동(뿌리), 고구마, 옥수수 등은 괜찮은 먹을거리였고 서리해 먹는 맛은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무 머리 부분만 먹고 도랑에 던져 버렸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 말씀대로 먹는 것 버리면 죄받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말 한다고 들어줄 녀석들도 아니지만 그런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과 더 사이가 좋지 않게 될 것이 뻔하였다. 


그런 아이들 뒤를 터덕터덕 따라오려니까 

"짜식! 머슴아도 아냐! 계집애 아냐? 계집애!" 

"먹고 싶지 않아! 난." 

"도둑질한 놈이나 옆에 있던 놈이나 다 같은 거야 인마! 잘난 척 떨지 마. 짜식!"  "너도 한번 해봐! 해보라니까!" 

모두들 나의 행동을 성토했다. 내가 무 서리하는 꼴을 보아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었다. 


그랬다. 아이들이 그런 짓 할 때면 늘 그들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망하고 있는 나였다. 애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 하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어왔기에 그런 행동을 아예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네에서 착하기로 소문이 나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순동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그들에게는 못마땅한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어른들께 고해바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은 내 별명도 부르며 앞서면 앞선다고 뒤서면 따라온다고 타박을 해 대곤 했다.

그래도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어느 날,  또 그 무 밭 옆을 지날 때였다. 모두들 맡겨 놓은 물건 찾으러 가듯 책보를 벗어던지고 우르르 밭으로 달려든다. 팔뚝만 한 노획물을 자랑스레 들고 나와 도랑가에 늘어앉는다. 그들의 행동은 퍽 용감해 보였다. 나도 그리 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음속에서 두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처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다. 


슬금슬금 주위의 눈치를 보며 용기를 내어 조그만 무 한 개를 뽑았다. 뽑아 온 무는 밭에 심겨 있는 것보다 엄청나게 커 보였다. 가슴의 콩닥거림에 땅조차 울리는 듯했다. 무 잎을 비틀어 던지고 껍질을 이빨로 벗겨 퉤! 퉤! 뱉었다. 한 입 두 입 맵고 지린내 나는 무를 몇 입 베어 먹었다. 그리고 멀리 던져 버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비탈로. 


짧은 순간의 일이었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고, 가슴의 쿵덕거림에 누가 들을까 두리번거렸다. 아이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멀찌감치 앞장서서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뒤쫓아 오며 '와! 웬일이야?' 하며 나를 부추겨 세웠다. 그 날은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참으로 드물게 함께 웃으며 어울릴 수 있던 날 중의 하루로 기억된다. 


  그 날 무 한 개를 뽑아먹고 우쭐해하며 악동이 되어 어울리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어쩌면 그 행위는 따돌림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벌써 50여 년 전의 일이다. 훌렁 벗어진 머리, 불쑥 나온 배, 요즘 60대의 대표적인 그런 모습으로 성장한 그들을 보면 추억의 영화를 보듯 콧등이 시큰거리고 씁쓸한 웃음이 스친다. 


'왕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예전에 내가 겪었던 따돌림보다는 훨씬 정도가 심한 것 같다. 단순 따돌림이 아닌 폭력을 동반한 따돌림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왕따' 아이들이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먼 훗날 '왕따' 시절을 그리며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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