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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l 07.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9. 장마, 지루함과 눅눅함 속의 설렘

금년 4~5월은 지독히도 가물어 가뭄 대책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6월 중순부터는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내려주었다. 바람 불며 내리기도 하고 찔끔 눈물 흘리듯 뿌려 금방 세차를 한 차에 얼룩을 남긴다.

지난해에도 강우량이 적어 밭농사에 지장을 주었는데 7월 장마가 올라온다는 말이 있은지 며칠이 지나도록 비 소식이 없다. 계곡은 메말라 바위마다 덕지덕지 검은 때가 앉아 있고 물길이 없는 곳은 갈대가 점령하여 숲을 이루었다. 금방이라도 야생 짐승이 뛰어나올 것만 같다. 올해도  마른장마가 농민의 가슴을 여위게만 하려나보다.


天災중에 대비하기 어려운 것은 가뭄보다는 폭우 피해가 아닌가 싶다. 가뭄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하기도 하련만 폭우는 순식간에 골짜기를 휩쓸어 가옥이며 농경지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변화무쌍함을 자랑하니 말이다.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가뭄에도 힘들기는 하지만 인명피해나 논밭의 유실 등 재산피해는 적다. 그래서 가뭄은 심하여도 거두어 들일 것이 있지만 큰 장마 뒤에는 아무것도 거두어들일 것이 없다. 물의 피해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겠다. 그러니 ‘칠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속담도 생겨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장마는 대개 7 ~ 8월 기간 중에 철을 맞았었다. 그러나 그런 통계는 근래 들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환경오염의 결과가 온통 이상 기온을 유발하며 제철도 아닌 때에 한곳에 집중적으로 비를 쏟아 ‘국지성 호우’니 ‘게릴라성 폭우’니 하는 말들이 낯설지 않고, 추수 때가 되어 폭우를 쏟기도 한다.



장마가 지면 좋아라 했던 추억이 있다. 농촌의 일요일이면 늘 들일을 거들어야 했으므로 비가 오는 날은 진짜 노는 날이 된다. 부모님들의 들 일 근심은 아랑곳없이 얼마나 바라던  날씨인가.

마당을 가로질러 시궁창을 빠져가는 누런 흙탕물을 바라보며, 감자며 철 이른 옥수수를 앞에 놓으면 쌀밥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흡족한 하루였던가.    

 

꼬맹이들은 소낙비가 내리는 날  비를 흠뻑 맞으며  도랑가에 나가 고기를 잡곤 했다. 엄마 몰래, 연륜만큼이나 찌그러진 주전자와 낡은 를 들고 도랑으로 간다. 논에서 나오는 맑은 물과 큰 도랑의 흙탕물이 합치는 곳을 훑으면 어김없이 붕어 새끼와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다. 도랑을 따라가며 그런 명당자리 몇 곳을 뒤지면 주전자 절반만큼의 고기를 건질 수 있었다.

흙탕물 속에서 고기를 잡는 재미란 참 묘한 느낌을 주곤 했다.  맑은 물과 흙탕물이 합치는 곳, 물살이 약한 곳, 풀뿌리 나무뿌리가 물속으로 자란 그런 곳은 훑기만 하면 영락없이 고기가 있었다.

물풀 사이에 쳇바퀴를 바치고 한쪽 발로 쿡쿡 밟아 훑어 내리면 쳇바퀴 속에 파닥이는 생명이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싱싱한 반항이다. 그것이 붕어라면 귀한 것이니 얼마나 환호했던가. 엄지손가락처럼 굵고 배때기가 누런 미꾸라지라면 호박잎에 둘둘 말아 불에 구워 소금 찍어먹을 생각에 군침부터 돌지 않았던가.


장마철에는 담 밑으로 난 수챗구멍으로도 미꾸라지가 올라오곤 했고,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날은 마당 곳곳에 떨어져 파닥이는 미꾸리를 보며,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헤아리지 못해 그저 할머니 말씀대로 용왕님이 보내주신 것으로 알고 비를 맞으며 주워 담고 볼 일이었다.


장마철. 온통 생활공간에 곰팡이가 쓸 것 같은 눅눅함을 말리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는 바닥으로 기며 온 집안을 연막 소독하듯 방구석 갈라진 틈으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연기는 찌든 가래를 뱉는 것처럼 끈적하게 틈새에 눌어붙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힘들게 꾸역꾸역 나오며 겨울철의 연기와 달리 케케묵은 매캐한 맛을 토해내곤 했다.


장마철에 느끼는 구들방의 따뜻함은 겨울철에 느끼는 아랫목의 따스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것은 마치 가래를 뱉고 난 뒤의 목구멍처럼 깔끔함이 있는 따스함이었다.


초가 흙벽 집에서 겪은 지루했던 장마기간. 유년시절의 누추하고 눅눅한 기억들이 그리운 것은 현대 생활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상실해 버린 자연과 함께 했던 삶이 그리운 때문일 것이다.

비 오는 날 낡은 쳇바퀴를 들고 도랑엘 가보고 싶다. 눅눅한 흙벽 집에서 매캐한 연기를 쐬며, 쳇바퀴 속에 파닥이던 동심을 그려보고 싶다.


* 체 :    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거나 거르는 데 쓰는 기구. 얇은 나무나 널빤지로 만든 쳇바퀴에

            말총,  명주실, 철사 따위로 그물 모양의 쳇불을 씌워 나무못이나 대못을 박아 고정하여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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