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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Jul 10.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10. 책보, 달그락거리던 동심을 넣고

이제 퇴직을 한다 하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일이면 퇴임식인데 지금의 심정은 덤덤하다. 퇴직하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많은 질문에도 아무런 답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은 자꾸 흘러 종점을 치닫고 있다.

엊그제 서랍 속의 물건들과 즐겨보던 몇 권의 책들을 책보에 싸서 가져왔다. 방구석에 그냥 둔 채 조용히 정리하리라 마음먹고 구석에 쌓아두니 눈길이 자꾸 간다. 


매번 인사발령이 나면 늘 책보에 짐을 싸서 나르곤 했다. 복사용지 박스를 사용해도 되지만 하나쯤은 책보를 고집한다. 그것이 짐을 옮기는 맛이랄까?


50여 년 전 국민학교 저 학년들은 대부분 등에 메는 비닐류의 가방을 지고 다녔다. 뜀박질을 할라 치면 등에서 가방도 함께 덜렁거리며 뜀박질을 하곤 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둔해 보이는 모습이다. 

3학년쯤 되어서는 등 뒤에 지고 다니는 가방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되었다. 있는 집 아이들은 끈이 달린 들고 다니는 가방을 사용했는데 퍽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런 가방을 들고 다닐 형편이 못되었던 나는(많은 아이들도 함께) 그때부터 책보에 책을 싸서 메고 다녔다. 



남자아이들은 어깨에서 옆구리로 대각선으로 비 끌어 매었고. 여자 아이들은 허리에 옆으로 일자로 메고 다녔다. 너 나할 것 없이 없던 시절이라 책보라 하더라도 창피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6학년이 되어서는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헌 가방을 자랑스레 들고 다녔다. 끈은 떨어져 헝겊을 덧대어 꿰매고, 가방 속은 잉크와 도시락의 김치 국물이 배어, 빨아도 그 자국이 진했던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책보와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도 퍽 어른스러운 대열에 끼었다고 생각한 것은 새것도 아닌 깁고 얼룩진 연륜이 쌓인 가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가방을 밑이 헤지도록 들고 다니다 새 가방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던 어느 날. 집으로 오던 길에 한 녀석이 춥다며 제방 둑에 불을 놓았다. 한참을 쬐다 모두들 그냥 가버린다. 불길이 번질까 겁이 난 나는 혼자서 불을 끄느라 가방으로 두드리고 하여 가까스로 불길을 잡긴 하였으나 새 가방은 불통이 튀어 말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갈 때는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들어갔다. 어머니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고 있는 머리맡에서 어머니의 놀라시는 말씀은 또렷이 도 들렸다. 이튿날 아침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크게 책망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런 놈들하고 다시는 어울려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그 가방은 책보를 메고 다니던 시절에 몹시도 탐나 하던 가방이었다. 대부분 회색과 쑥색 계통의 것이었고, 여학생들의 것은 자주색 가방이 많이 유행하였던 것 같다. 


요즘은 책가방은 등산 가방처럼 지고 다닐 수 있게 되어있다. 가방의 재질도 좋아 가볍고 질기고 색상도 다양한 것이 나온다. 어찌 생각하면 실용적이기는 하지만 옛날의 학생들처럼 의젓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새 가방을 사러 집을 나서며 아내는 아이들에게 절대 비싼 것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지만 아이들의 끈질긴 주문을 이기지는 못하였는지 기어코 사 가지고 온 가방은 최고가의 가방은 아니지만 유명상표의 제품이었다. 


새로운 학년에 대한 동경과 기대 심리를, "선생님은 어떤 분 일까"와 물려받은 책과 가방에서 느끼곤 했던 나의 세대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새 학용품과 새 가방 등 새것을 준비하며 느끼는 것 같다.

어느 회사의 제품이냐에 따라 끼리끼리 편 가르기가 되는 요즘,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마음을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 등에 걸린 가방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을 그려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유년시절을 자꾸 그리게 된다. 지금의 삶에서 헛헛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게다. 

사람은 누구나 상상력을 지닌다. 미래로의 상상이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 설렘. 바람, 도전이라면, 과거로의 회상은 자신을 반추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까? 

아리고 쓰린 기억들을 꺼내어 용서하며, 즐거운 기억들에서 용기를 얻으며  그래서 현실이 더 행복함을 확인하며 더 진한 맛을 느끼며 사는 것.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나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책보의 추억은 달그락거리던 동심이 그려진 물건이다. 인사 발령 때마다 서랍 속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책보에 싸며 또 다른 근무환경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갖곤 했다. 


이제 퇴직을 하며 마지막으로 싸 본 책보. 참 오랜 시간 동안 수십 번의 인사발령 때마다 싸고 풀었지만 지금은 서재 한편에 풀지 않고 두었다.

언제 비 오는 날 조용히 풀며 지난 시간들을 꺼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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