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뚜껑으로 가리고 먹던 엄마의 정성
회식자리에서 고기를 먹고 나니 식사 주문을 받는다. 고기를 실컷 먹고도 또 밥을 먹어야 하나 하며 시큰둥해 있는데 메뉴를 보니 끌리는 것이 있다.
‘추억의 도시락’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도시락 밑에 김치를 깔고 고추장을 넣고 그 위에 밥을 덮어 데워 준단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추억의 도시락 그것이다 싶어 주문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인가보다. 형과 누나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도 도시락을 싸 달라고 졸라 가지고 갔지만 2부제 수업을 하던 시절 오전반이었기에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는 없었다.
집에 오는 길은 들녘이고 산길이고 하여 혼자 어디 앉아 먹기에도 마땅치 않아 집 뒤꼍의 밤나무 밑에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왜 도시락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이 아닌 곳에서 엄마의 손길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또 도시락 속에 아침에 먹던 반찬보다 나은 그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4. 5학년이 되면서 매일 도시락을 들고 다녀보니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꺼내기가 창피했다. 많은 아이들이 도시락만은 쌀이 섞인 밥을 싸 오는데 내 도시락은 보리쌀이 더 많았고, 감자 고구마가 섞여 있는 밥이었다. 그것이 창피해 뚜껑으로 반쯤은 가리고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다 양은 도시락은 들고 다니면 뚜껑과 마찰되는 부분 닳아 늘 잿빛 물이 들곤 하여 먹기가 께름칙했고, 가방 속에는 반찬 국물이 새어 가방과 책 귀퉁이는 언제나 김치 냄새 고추장 냄새 등이 배어 있었다.
한동안 보온도시락이 유행이더니 요즘은 학교 급식소에서 밥을 해준다.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고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엄마들은 반찬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면 아이들은 집 밖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엄마의 손맛을 느껴보지 못하고 크는 것 같다.
도시락 맛은 겨울철이 제격이다. 넷째 시간이 되면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우기 시작한다. 난로 당번은 도시락 위치를 서너 번 바꾸어 데운다. 점심시간이 되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도시락을 흔들어 비벼 먹곤 한다. 그래서 넷째 시간의 공부란 김치 타는 냄새로 제대로 된 수업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요즘 약삭빠른 사람들이 추억의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기도 한단다. 기발한 착상이다. 예전처럼 잘게 썰은 김치를 도시락 바닥에 깔고 밥을 담아 데워서 배달을 한다. 추억을 떠올리기 맞춤인 도시락이다.
도시락.
아직도 우리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는 식사 문화중의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건 그 속에 담긴 장만하는 이의 사랑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사람은 밥만 먹고사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함께 먹고사는 동물이야"하시던 말씀이 오랜 기억 속에서 뛰쳐나온다
주문한 도시락이 나오고 옛날처럼 이리저리 흔들어 비벼 보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에 충분한 이벤트다.
뚜껑으로 가리고 먹던 도시락을 떠 올려보며 그것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엄마의 정성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