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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량 Oct 08. 2023

나는 괜찮은 개발자일까?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있다. 개발 블로거의 글을 읽다 모르는 용어가 나올 때, 이 사람은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을 때. 내가 가진 얕은 지식을 되짚어 보다 그만 한숨이 나올 때. 그런데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때. 개발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한다. 나, 괜찮은 개발자인가?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열심히’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나는 뭐든지 다 외우려고 했다. 요령이라고는 없었고. 효율도 없었고. 그래도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인 그런 아이였다. 


그런 내 주변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수학 모의고사를 15분 만에 풀고도 100점 받는 아이. 과학 탐구를 항상 만점 받는 아이. 이과였지만 국어, 영어를 잘하는 건 기본이었다. 나에겐 죽어라 어렵고 힘든 일을 너무나도 가뿐하게 해내는 아이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그게 어떻게 바로 이해가 되는 거야?’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그 아이들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었다. 결국, 끝내, 재수까지 해서도 닿지 못했지만. 나는 재수를 하고 나서야 포기할 수 있었다. 이만큼 해 봤으면 됐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포기하면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후련했다.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무릎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내게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 그 길은 나와 맞지 않았던 거야. 새로운 길을 가보자.’


그렇게 나선 길이 결국 나를 개발자로 이끌었다. 이곳은 다를 것이라고 너무 기대했었나 보다. 성적으로 경쟁하던 그때와 다를 거라고. 괴물처럼 공부하고 시험에서 만점 받으며 유명 대학에 척척 합격하는 아이들이 모인 그곳과 다를 것이라고.


어딜 가나 괴물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 아이들이 괴물로 보였다면 개발자의 세계에서 만난 그들은 ‘괴짜’였다. 자기 분야에 대한 뚜렷한 관심.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개발을 향한 열정.


어느 것도 어쩌다 개발자가 되어 버린 나는 따라 할 수 없었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겪어버린 일에 지쳐있기도 했고. 따라 해도 닿을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저 동경했다. 선망했다. 시기했다. 질투했다. 나는 가지지 못한 그 자질을 한껏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숨기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다. 멋있어.


불안했다. 하루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는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안고서 살아야 하나. 이번엔 고등학교처럼 졸업이라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살아야 해?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만 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살아야 해? 평생 옆에서 박수만 칠 거야?


대답은 분명했다. 그건 싫어.


나는 나대로 괜찮은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나에게 괜찮은 개발자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은 반드시 내 안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닿지 못할 곳을 쳐다보는 꼴이 될 테니까. 그러니 자신 없지만 꼭 필요한 작업을 시도했다. 바로 나의 장점을 찾아보는 일. 개발자로서 나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맡은 일에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사람. 집요하진 않아도 부족한 부분은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 능력에 대한 자부심은 부족해도 해 보겠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 열정을 불태우진 못해도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 


내게도 장점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자.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같이 일하기엔 충분한 사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그런 개발자가 되자고. 그곳엔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이 정한 길이 아니라 내가 찾아낸 길. 이번에는 울지 말고 걸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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