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없다.
내가 쓴 글에. 내가 하는 일에.
내가 자신을 가진 적이 있던가?
자신감이 자만심이 될까 무서워.
이 생각을 1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했다.
가장 찬란한 순간에도 난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학생 시절 일기를 열심히 썼다.
일기에 썼던 문장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종이류로 분리되어 버려졌다.
일기에도 빠지지 않았던 말.
'해내지 못할까 봐 무서워.'
'내가 자만하고 있을까 봐 무서워.'
그래서 넘어지게 될까 봐.
그러면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며 날 비웃을까 봐.
거 봐, 그럴 줄 알았어.
상상만으로 심장이 떨어졌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 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그렇게 내게서 뒤돌아 설까 봐.
그렇게 미움받을까 봐.
무시당할까 봐.
홀로 남겨질까 봐.
버려진다고 생각했다.
과한 생각이다. 알고 있다. 내가 비합리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걸 고치기 위해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고 있으니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발판 삼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비틀거리며 걸어간 끝에
도착한 곳이 개발자라는 직업이었고.
나와 같은 나이에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을 보며
나는 왜 아직도 진행형인지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걸어온 것 같은데 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지.
내가 하는 일의 결실은 언제 맺는지.
어디로. 무엇을. 어떻게. 왜.
아무것도 답할 수가 없다.
혹시 누군가 거기에 있다면,
이제는 일기에 가둬 놓지 않은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내게 뭐라도 말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