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어 바이스탠더,
우리는 걸어갈 거야.
이 길의 끝이 천국이거나 그곳이 아니라고 해도.
- 사요나라 바이스탠더, YUKI
애정하는 애니메이션, 3월의 라이온 오프닝 '사요나라 바이스탠더' 후렴구. 천국이 아니어도 걸어간다는 말이 좋아 늘 흥얼거렸다. 그러다 지금처럼 제목을 붙여야 할 순간에 번뜩 떠올라 주었는데, 그리하여 나온 제목이 '그곳이 성공은 아닐지라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일기를 열심히 썼다. 언젠가 책으로 만드는 꿈도 꿨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 없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고, 나의 고통만 눈에 보였으니까. 길고 긴 시간이 모두 끝나면 세상에 내 이야기를 펼치리라.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정작 밖으로 나와서는 알아차려버렸다. 모두 나와 같은 시간을,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재수를 끝낸 나는 더 이상 '입시'에 목매던 스스로를 마주할 수 없었다. 대체 내가 괴롭힌 사람이 몇 명일까. 무엇보다 나는 자신을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를 읽는 일은 당연히 고통이었다. 나는 일기를 모두 버렸다. 중학생 때부터 썼던 많은 일기를 모두.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랬던 내가 나조차도 어쩌자고 다시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내 들었는지 모르겠다. 시작은 사촌과의 대화였다. 내가 고민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나 지금 개발자 이야기로 글을 쓰고 있잖아? 이걸 다 쓰면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모르겠어."
"너 학교 다닐 때 이야기 써 보는 건 어때?"
"그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사촌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발목 골절로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지금 백수가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지금 나는 백수고 넘쳐나는 게 시간이며 무료함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다.
'해볼까? 한 번쯤은 써 보고 싶었잖아.'
그런 연유로 시작했다. 글이 모여 책이 된다면 제목은 '그곳이 성공은 아닐지라도'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의 학창 시절을 아우르는 문장을 고르라면 저 문장이 딱이다. 내가 도착한 곳은 성공이 아니니까. 성공하지 못한 이야기. 그래도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그랬는데도 성공 못 했다고?'라고 할 수도, '그랬으니까 성공 못 했지.'라고 할 수도 있다. 모두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나는 좀 예민하고 유난인 아이였으니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고등학교? 중학교? 아니면 더 가서 초등학교?
일단 중심 키워드는 강박이다. 나는 강박이 아주 심했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엄마 잘못인가 하며 자책했지만 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타고난 성향이었다고 생각한다. 강박이 심한 아이는 좋은 점도 있지만 인생을 고달프게 살기도 한다.
강박에 더해 완벽주의도 있었지.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못 미치면 제 분에 못 이겨 뒤로 넘어가는 어린아이를 상상해 보라. 동그란 안경을 쓰고 머리를 한 갈래로 단정히 당겨 묶은 8살 정도의 여자 아이를.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공부할 때는 무슨 말을 들어도 웃지 않던. 교과서에는 수업 관련 필기 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며 친구가 본인 교과서에 낙서하자 교실이 떠나가라 울던.
이쯤 되니 밖으로 꺼내도 되는지 심히 걱정이 된다. 다분히 내 마음 편하자고 이 대장정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