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환자로 고정한 자아

오케이키 - 카후나의 난임일기

by 오케이키 Okeiki

몸을 사리게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 어디든 따라다녔다.


3년간 매일 하던 아침 수영. 전속력으로 신나게 발차기를 하다가, ‘아차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 하고 속도를 반으로 줄였다. 등산 약속도 취소했다. 대신 천천히 걸었다. 운동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는데. 이제 어쩌나, 막막함이 밀려왔다. 과장해 표현하자면,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무리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인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가 무리인 걸까.


그즈음 항암치료를 하는 친구와 만났다. 우리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친구의 부모님도 남편도 친구가 조금이라도 늦게 잘 때, 조금 더 멀리 걸을 때마다 무리하지 말라며 난리라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자신을 작게 만 드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스스로에게 무리하 지 말자고 말하면 모든 의욕이 사그라든다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날 둘이 손을 마주 잡고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우리 꼭 무리하면서 살자고. 우리 인생을 살자고. 그 순간 크게 웃음이 터졌다. 빼앗긴 자유를 되찾은 것 같은 시원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게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지만 열심히 내 삶을 살기는커녕 잔뜩 의기소침해져서 더 쪼그라들었다. 병원에 다니면서 무리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다 친구와 약속을 떠올리며 그가 추천해 준 책을 펴봤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란 책이 었다.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 씨가 의료인류학자인 이소노 마호 씨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책 속에 내가 꼭 깨달아야 하는 인식이 있었다. 바로 내가 자아를 환자로 고정하고 있다는 것.


일상만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휴대전화에서 가장 자주 여는 게 병원 앱이었고, 가장 자주 가는 곳 이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환자 번호로 존재했다. 주사를 맞고, 채혈을 하고, 주기적으로 약을 먹으니, 일상은 딱 환자다.


전혀 아픈 곳이 없는데 생활이 이러니 스스로를 환자라고 생각했다. 시험관 차수가 쌓이고 병원에서의 자아가 너무 중요해져 버려서 다른 자아를 모두 지우고 난임 환자라고만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 책을 읽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동공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을 충격에 빠져 앉아있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책을 보니, 정작 암 과 함께 사는 미야노 씨는 나처럼 바보 같지 않았 다. 분명히 암을 앓고 있지만, 그것이 본인의 전부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 신의 인생을 놓아버리게 되고 불행이 시작될 것 같 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암에 걸렸다고 울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았다. 본업을 뒤로하고 치료에만 매달리지도 않 았다. 책도 쓰고, 다른 도시로 강의도 다니며 자신 이 살 수 있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았다. 하루하루 매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자문했다. ‘나도 그녀 처럼 용감해지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인식의 전환 후에도 실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나만 아는 미묘한 변화는 있었다. 수영할 때 남들은 모를 만큼 발차기를 빨리 한다거 나, 환자가 아닌 자아를 다시 찾으려고 다시 일을 알아보고, 태권도 성인반에 등록하기도 했다. 세상으로 나를 다시 던지려고 용기를 내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얌전히 환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쪼그라트리는지 몰랐다. 알고 나니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세상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고. 저쪽이 라고 스스로 말하게 되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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