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 카후나의 난임일기
한 번은 목요일 저녁을 먹다가 생리가 시작된 걸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즉 금, 토요일 중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 (일요일은 휴무)
그런데 토요일 주치의 선생님 진료가 없었다. 다음 날 중요한 미팅이 있었는데 전날 저녁 어렵게 취소를 단행했다. ‘그래도 시험관이 더 중요하지’ 하며 쓴맛을 견뎠다.
다음 날 아침 7시, 병원에 가 당일 접수를 하고, 2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봤다. 난소에 물혹이 생겨 이번 달에는 쉬어야 한단다. 주치의 선생님은 과배란을 하다 보면 난소에 물혹이 생기는 것은 흔한 일이고,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라고 하셨지만, 혹이라 는 말에 놀랐다. 난소를 계속 자극하니 난소가 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는데도, 이미 나는 인터넷을 한참 뒤져 혹의 정체를 찾고 있었다. 사실 그보다는 중요한 미팅까지 취소했건만 다음 차수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뭐 하나 내가 결정할수 있는 것이 이렇게 없구나, 하고 무력감을 느꼈다.
이렇게 수동적인 난임 세계에도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영양제’ 다. 코큐텐, 활성 엽산, 이노시톨, 아르기닌은 기본이고, nmn, 식이 유황, sod, 유비퀴놀 등, 영양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주치의 선생님께 물어보면 대부분 “영양제 먹어야 효과가 없어요. 그냥 엽산만 드시면 돼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심지어 금액도 상당한데 영양제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뭐라도 해보겠다는 마음. 노력을 해야 안심할 수 있겠다는 마음 말이다. 비슷한 이유로 소고기, 단백질 식사에 집착하고, 아미노산 수액, 한방치료에 열심히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난임 기간 동안 삶의 수동성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인생에서 얼마나 적은지. 난자 채취를 하고 싶어도, 채취하고 나서 이식하고 싶어도 내 의지로 할 수가 없다. 운 좋게 배아를 이식했다고 해서, 착상이 될지, 건강한 임신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노력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없다고까지 느껴졌다. 평생 뭐든 열심히 하라고 배웠다. 능동적으로 살라고. 이 기조로 난임 생활에도 열성적인 마음으로 덤볐다가 자주 쓰러졌다. 왜 마음대로 안 되냐고 화를 내면서 병원을 다녔다.
그러다 마음이 평화로운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 인생에 깨끗하게 내 노력으로 가지게 된 것은 무엇인가? 태어나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 시험관을 도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게 된 것, 고모를 보고 밝게 웃어주는 조카를 곁에 두고 사는 것. 인생에 아무 노력 없이 내게 주어진 것들 중 좋은 것들이 천지였다.
더 주지 않는다고 바닥에 누워 떼쓰고 있는 애 같은 나를 내가 달래려 이런 말을 했다. 노력한다고 안 되는 것에 화만 낼 것이 아니라, 노력 없이 받은 것들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끔은 이렇게 어른스러운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