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두 번 군대를 보낸 날
퇴근 후 뉴스를 보는 중 '청해부대'가 귀에 꽂혔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대비해 청해부대 투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11여 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11년 1개월 7일 전 2014년 5월 16일이다.
남편의 마음은 어떠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들을 두 번 군대를 보낸 날이었다.
큰아들은 육군이었던 아빠를 보면서 육군은 절대 안 간다며 입버릇처럼 늘 말해 왔었다.
1차로 공군을 지원하였는데 불합격이었고, 2차로 해군을 지원하여 합격한 아들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매일 집에 잘 못 오시는 아빠가 육군이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2013년 12월 16일.
아들은 해군으로서 해군 경남 진해에 위치한 해군교육사령부에 입영하였다.
(아들 덕분에 처음으로 진해를 가보게 되었고, 이후 면회를 가게 되면서 그 유명한 진해 벚꽃도 구경할 수 있었다.)
육해공군의 전 사병이 마찬가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체력 단련과 정신 교육을 하였을 것이고
제식, 사격, 각개전투, 화생방 훈련과 함께
해군만의 특화 훈련으로 수영 훈련을 하였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신병 훈련 과정 중에 생존 수영 훈련은 정말 힘들었는데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대다수 힘들어했던 훈련이라고 하였다.
육군도 공군도 그러하듯, 해군 역시 신병 훈련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기초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자대 배치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아들은 '문무대왕함'의 갑판병으로 결정이 되었다.
이때, 군함에 배치를 받게 되면 함정 내 비상 상황 대응 훈련 등 훈련을 또 받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갑자기 연락이 왔다.
'문무대왕함'이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무대왕함' 소속의 장병 전원이 파병에 선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아덴만 파병 임무는 소말리아 해역에서 한국 선박을 호송하고, 유사시 재외국민 보호 작전을 지원하는 것으로 매우 중대한 임무인 동시에, 임무수행 장소가 바다 위라는 특수한 환경이기에 선발하는 과정 역시 까다롭다고 하였다.
신원 조회는 기본이고 다양한 여건과 상황 등에 대한 조사와 면담이 수차례 진행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본인은 가기 싫다고 하였다.
파병을 가 있는 동안 가족(특히 여자친구와의 연락두절이 가장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과 연락을 못하는 것은 정말 싫다면서......
이때 남편이 아들에게 전한 말이 있다.
"네가 '문무대왕함'에 배치를 받은 이상, 살아도 '문무대왕함'에서 살고, 죽어도 '문무대왕함'에서 죽어라."
결국, 아들은 절차에 따라 청해부대 16진 소속으로 '문무대왕함'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2014년 5월 16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16진이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였다. 청해부대 16진 '문무대왕함'은 그 당시 네 번째 파병임무 수행을 하게 되었는데, '문무대왕함'에는 검문검색대와 항공대, 해병대 등 300여 명의 장병이 탑승하였다. 그 300여 명 가운데 한 명이 아들이었다.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하는 '문무대왕함' 갑판에 서 있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불과 몇 개월 전에 아들을 군대에 보냈는데, 아들을 또다시 군대를 보내는 날이 된 것이다.
아니 군대를 보낸다기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망망대해 사지로 아들을 보내는 것만 같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직전 청해부대 15진에서 한 명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더욱 컸었다)
그리고, 6개월 후 2014년 11월 20일 임무 완수 후 귀환을 하였고 이날 역시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환영식이 열렸다.
{아들이 제대 후 전해 들은 수많은 소식 중 가장 놀란 것은, 파병 중 손가락을 다쳤다는 것이다. 군함이라는 환경 내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통증을 참아야 했는데, 통증보다는 함장님의 명령을 따르다 다쳤기 때문에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 때까지는 훈련 등 일부 열외를 시켜주셨는데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이 더 힘들었다고 하였다. 세상에......
어쩐지 아들 생일에 함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시어 안부 인사와 함께 아들과 짧은 통화를 허락해 주었는데 (그때는 다른 사병들에게도 똑같이 생일 이벤트를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본인의 명령을 따르다 다친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보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군함이라는 특수하고도 제한된 공간에서의 군생활은 매우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았다.
(두서없이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파병 장소의 기온이 40도 이상이라는 비현실적인 환경을 기본으로 하여, 매우 좁고 밀폐된 공간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면 천장이 바로 코앞에 닿을 정도로 개인 공간의 제공도 사생활도 거의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으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생활하기에 손도 다리도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 그래서 몸의 자유로움에 대한 제약이 정신의 한계까지 느끼게 했을 것이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안쓰러웠다.
24시간 교대 근무도 힘들었는데, 교대 근무를 마치고 잠시 눈을 붙이려 할 때 수시로 실시하는 비상 훈련이라도 갑자기 겹치게 되면 잠도 못 자고 죽을 맛이었다고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멀미가 심하지는 않았다고 하였지만, 파도가 심한 날은 멀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군함에서는 휴대폰 사용의 제한과 인터넷 사용이 거의 불가하여 가족과의 연락이 자유롭지 환경으로 인한 격리된 생활이 외로움으로 이어져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조정호 기자의 기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