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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예의

by 시간나무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예의에만 집중하여

일방적인 행동을 취할 때

오히려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확률이 높다.


살다 보면

필요에 의하여 또는 어쩔 수 없이라도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야 할 때가 있다.


그때 반드시 최우선 시 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과 의사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명분으로 다가가지만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과 의사를 무시한 예의는

누구를 위한 예의인가?


그것은

예의가 없는 무례한 예의

결국 예의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관계에 있어

서로를 위한 예의에 대한 정답은 모르겠지만

서로를 위한 예의에 대한 모범 답안 하나쯤은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숨을 쉬는 동안

배움은 절대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이다.


나 자신도 되살펴보며

나의 일방적인 행동에

그 누군가는 불편하지 않았을까 되생각하며


더욱더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과 의사에

귀기울여야함을 배운다.


실수의 제로화가 최고겠지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실수의 최소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자고

나와 내가 새끼손가락을 걸어본다.




2023년 2월 21일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날 그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2년 전 2월에는 급박한 건강상의 문제로 갑작스럽게 수술까지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참으로 곤혹스러웠던 하루하루를 보냈다. 입원하고 수술하고 치료받는 등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기에도 힘겨운 나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에서 수술 후 필요한 치료와 회복을 위한 입원기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대다수의 환자들은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로 퇴원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이런 병원의 시스템에 의하여 퇴원을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퇴원을 하는 과정에 회사 측으로부터 병문안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갈 예정으로 마음은 감사히 받겠으며 회사에 출근하면 인사를 드리겠다고 정중히 사양을 하였다. 그럼에도 상사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판단을 하였는지 나의 상황 설명은 안중에도 없이 병문안을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으로. 재차 정중히 사양을 하였다.

(나의 말을 듣기는 한 것일까? 완치되지도 않은 환자가 퇴원을 하여 집에 갔는데 어떠한 사유로라도 누군가 집에 방문을 한다면 손님 대접을 해야 하는데, 환자가 손님 대접을 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지 않나? 더구나, 병원에서 이제 막 퇴원하여 초라한 몰골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의 건강 상태가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당장 집으로 가는 것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집에 있으면서 집에 있지 않다고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잠시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공원을 찾았다.)


그런데 결국 집 앞까지 왔다는 연락이 왔다. 혹시나 했던 생각이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병문안 온 것은 감사하지만 나는 지금 집에 있지 않으니 병문안은 잘 받았다고 전할 테니 회사로 돌아가 달라고.

(이때 너무나도 황당한 사태에 이해는커녕 화가 났었다. 아무리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여도 너무 상식적인 선을 지키지 못하는 것 아닌가. 결국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는 체면치레에 불과한 일 아닌가. 이것이 무엇인데 이렇게까지 했을까?)




그날 상사의 지시에 병문안을 왔었던 그들에게는 사과를 하였다. 마지막에는 나도 화를 냈으니까. 사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나. 그들은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


그날 그 사건 이후부터 나는 그들이 아닌 나에게 눈을 돌렸다.

어떠한 경우라 하여도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과 의사를 무시한 채

나도 예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받았을 때는 상처였는데, 내가 줄 때는 상처인지 모르면 안 되기에

나는 나를 수시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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