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선택하고, 그 옆에 서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환갑잔치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 뒤를 따라 어느덧 나 역시 환갑을 맞이하게 된 2026년.
이쯤 되면, 무엇보다 나 자신만큼은 스스로 잘 다스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기 통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의지는 바람에 흩날리는 깃발처럼 흐트러지고, 열정은 희미하게 꺼져가는 불씨처럼 식어간다.
그 변화를 자각하는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괴감이 마음 한켠에 스며든다.
우리는 흔히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강조한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상태.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약속이 되고, 그 약속이 행동으로 완성되는 태도다.
이 말에는 '나와 너' 사이의 관계와 책임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자의든 타의든, 내 입을 통해 전해진 말에는 책임을 지려 애써 왔다.
상대가 농담처럼 던진 말일지라도,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면 차리리 침묵을 택했다.
타인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질문 하나가 스쳤다.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 앞에서 과연 어떠했는가.'
타인과의 약속은 말이라는 소리의 형태로 남지만,
자신과의 약속은 대개 마음속을 맴돌 뿐 드러나지 않는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래서 나만 눈 감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약속을 쉽게 미루거나 없던 일로 만들어 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는다.
요즘의 나는, 작은 화면 속 세상에 너무도 쉽게 나를 내어준다.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작에 앞서 잠시 <숨 고르기>라는 명목으로 영상을 하나 고른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식어가는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하나쯤 보고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거야.
이 영상만 보고 계획대로 하면 돼."
그러나, <숨 고르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 손가락은 어느새 끝없이 이어지는 알고리즘의 고리에 걸려든다.
그렇게 정신을 빼앗긴 채 흘려보낸 시간 뒤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계획 앞에서 어김없이 밀려오는 공허함만 남는다.
게임이나 SNS에 빠진 이들을 걱정하던 자리에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나는 나에게 가혹한 말을 내뱉는다.
"어이가 없다. 아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타인과의 약속에는 1분만 늦어도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에는 한두 시간을 어겨도 사과 한마디, 변명 한마디 남기지 않는다.
언행일치(言行一致)가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는 태도라면,
지금의 나에게 더 절실한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숙제를 낸다.
언행일치(言行一致) 이전에 의행일치(意行一致) 하자고.
비록 소리 내어 결의하지 않았더라도,
내면에서 일어난 뜻(意)과 그 뜻을 향한 행동(行)이 하나로 이어지는 삶.
타인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 자리에서도,
오직 나와 내면의 의지 사이의 신의를 묵묵히 지켜내는 삶.
그것이야말로 내가 회복해야 할 자기 신뢰의 시작일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명언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Choose a self and stand by it’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읽는다.
'자신을 선택하고, 그 옆에 서라'
그리고 그것을
의행일치(意行一致)라 부른다.
오늘 하루.
나는 알고리즘의 손짓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먼저 응답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