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여기저기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우리나라 나이로 중학생 60명이 코리밀라 센터로 캠프를 왔다. 벨파스트에서 공유교육 캠프를 왔다. 두 학교에서 선생님과 캠프를 도와줄 선배들도 함께 왔다. 한 학교는 가톨릭계 학교, 한 학교는 개신교계 학교다. 여느 아이들처럼 캠프를 온 것이 들떠서 센터 안을 돌아다닌다. 선생님과 상의해서 캠프 동안 센터에서 휴대폰을 보관할 때도 있는데, 휴대폰을 맡기기 전까지 아이들은 센터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마구 찍는다. 농담으로 ‘코리밀라 센터의 풍경만으로도 평화 커뮤니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센터에 막 도착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차 한잔과 주스, 비스킷이다. 캠프를 맡은 자원활동가들은 아이들이 센터에 도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캠프 전반적인 것을 도와준다. 아이들을 위한 환영 포스터를 만들고, 프로그램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센터에 도착하면 지낼 방을 보여주는 것도 자원활동가들의 일이다. 아이들이 짐을 풀면 캠프가 시작된다. 6명에서 10명 정도까지 학교와 성비를 적당하게 섞어서 아이들과 모둠을 나눈다.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이 친해질 수 있는 아이스브레이킹 게임부터 시작해서 캠프 동안 모둠 1개를 맡아 모둠의 아이들과 함께 호흡한다.
자원활동가는 모둠 교사를 하고, 프로그램 인턴과 프로그램 스태프가 캠프 전체를 진행한다. 선생님과 학교와 미리 상의해서 아이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코리밀라가 해안가에 있어서 날이 좋으면 다 같이 해안가 산책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 밸리카슬 해변에 가면 꼭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야 한다. 조그만 해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세 개나 있어서 날이 좋은 날에는 해변 옆 풀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밸리카슬 출신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해변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어 삼일 캠프에서 두 번이나 마을로 내려가서 아이스크림을 함께 사 먹었다.
나는 아이들이 첫 번째로 만나는 ‘한국 사람’인 일이 많았다. 북아일랜드에서 K-POP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한 친구는 나에게 수줍게 휴대폰 케이스에 끼워둔 레드벨벳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강남스타일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경우도 있다. BTS는 춤까지 따라 추는 아이들도 있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중에서 누가 좋냐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어느 축구팀을 좋아하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아는 축구팀이 많이 없어서 손흥민이 토트넘에 있어서 토트넘을 좋아한다고 하면 자기도 ‘Son’ 좋아한다며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미국 자원활동가들에게 자기가 미국 어디 어디를 가봤다며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자원활동가들이 아이들에게 자기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International cafe’란 이름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내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한국에는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이 없다’였다. 세계화로 한국에도 기네스, 맥도날드, 피자헛 등이 다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벤앤제리만 남는다. (하지만 작년부터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이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대신 북아일랜드에는 ‘배스킨라빈스’가 없다.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정체성'이다. 이번 캠프에서도 정체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석고붕대로 마스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편안한 상대와 짝을 지어서 마스크를 만든다. 석고붕대 조각을 따뜻한 물을 적셔 얼굴에 붙이면서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만들어나간다. 랩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게 코와 입 자리에 미리 구멍을 뚫는 것을 자원활동가들이 하나하나 확인한다. 얼굴 마스크를 만드는 것이 불편한 친구는 대신 손을 본뜬 모양을 만든다. 마스크가 얼굴에서 얼추 마르면, 마스크를 얼굴에서 떼어내서 말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물감으로 자신의 마스크를 꾸민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들로 아이들이 마스크를 꾸민다. 꾸미기 전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아이들은 태어난 곳, 가족, 자신의 종교, 얼굴 생김새, 외모, 꿈, 좋아하는 것 등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눈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스크를 꾸민다. 마스크의 외부 자신이 밖으로 드러내는 정체성, 마스크의 내부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아이들은 자신의 마스크 바깥에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국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아일랜드 계면 아일랜드 국기를, 개신교인 영국 계면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을 그린다. 국기 색깔로 마스크를 장식하는 아이들도 있다. 내가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지가 아이들에게는 생각하는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것이다. 한 아이가 국기를 그리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따라 그리는 아이들이 많다. 그림을 그리다가 막히면 조심스럽게 나에게 질문하는 아이도 있었다.
미안한데 유니언잭을 어떻게 그리는지 알아?
북아일랜드에는 크게 3가지 종류의 학교가 있다. ‘Controlled schools’, ‘Integrated schools’, ‘Roman Catholic-managed schools’. ‘Controlled schools’는 북아일랜드 교육 당국에 의해 선생님과 학교 스태프들이 관리되고 있는 학교인데, 이 학교들의 대다수는 원래 개신교 교회 쪽 학교였다. 지금도 학생의 2/3 정도가 개신교 배경의 학생들이다. 2016/2017 통계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내 560개 학교가 여기에 속하며, 이는 북아일랜드에 등록된 학교 숫자의 48%에 해당한다. ‘Roman Catholic-managed schools’는 가톨릭 계통의 학교들이며 별도의 협의회(The council for Catholic Maintained Schools)에서 학교 운영이나 선생님 관리들을 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학교 내에서 466개 학교가 가톨릭 쪽에서 운영하는 학교다. 이 두 종류의 학교는 학생들의 종교적 배경도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 내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학교의 분리는 북아일랜드 내 분단을 나타내는 동시에 분단을 끊임없이 다시 만들고 있다.
Integrated schools(통합학교)는 학교의 분리로 인한 분단을 극복하고자 설립되었다. 통합교육은 다른 종교적 전통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은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 전통에 있는 아이들과 교직원을 함께 한 학교로 데려온다. 통합학교는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한다. (Integrated education brings children and staff from Catholic and Protestant traditions, as well as those of other faiths, or none, together in one school. Integrated Schools ensure that children from diverse backgrounds are educated together. 출처: 북아일랜드 교육부) 통합학교는 북아일랜드 내에 62개 학교가 있으며, 2014/2015년 기준으로 북아일랜드 내의 7%의 학생만이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강순원 교수님이 쓰신 ‘북아일랜드 통합학교 기행’이라는 책을 보면 북아일랜드 통합학교에 관해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을까? 1998년 벨파스트 협정(성금요일 협정) 이후 공유교육(Shared education)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공유교육은 다른 영역의 있는 학교들이 공동으로 의미 있는 학습경험을 만드는 기회를 아이들과 교직원, 지역사회에 제공하고자 파트너십을 맺고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함께 클럽활동을 하거나 서로의 학교에 방문하여 교류수학을 하거나, 학교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 내에서 상징성 있는 오래된 평화운동 단체로, 이렇게 공유교육을 하는 학교나 통합학교에서 코리밀라로 와서 캠프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캠프 마지막 날, 아이들은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간다. 건물 옆에서 떠나는 버스를 향해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청소까지 끝마친 지친 자원활동가들이 기숙사로 모이고 함께 라운지에 모여서 캠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힘들었던 이야기, 재밌었던 이야기 등을 나눈다. 이 캠프가 끝나고 나서 많이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들이 모둠 내에서 그다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도 아이들끼리 서먹했다.
자원활동가들이 자기가 맡은 모둠도 그랬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이 아이들에게 이 사회의 갈등과 공유교육은 이런 것이라고. 아이들이 다니는 두 학교는 공유교육을 하면서 서로의 학교로 수업도 들으러 가고 캠프나 다른 활동도 같이 한다고 한다. 서로의 얼굴을 아는 친구들도 몇 명씩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교류활동이 끝나면 캠프와 교류수업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다시 접점 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다시 분리된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다른 거리를 걷고,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모르는 척’하며 살아간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짧은 캠프가 끝나면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굳이 친해질 필요가 없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었다.
코리밀라의 모든 공유교육 캠프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2-3일 캠프 동안 함께 공을 차고 뛰어놀면서 즐겁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학교가,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더 친해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코리밀라 센터에서도 아이들이 캠프 프로그램 외에도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놀이공간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한 번의 캠프만으로는 마법같이 친해지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함께 노력할 때 서로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