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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Dec 25. 2019

3. Northern Irish

by 파랑

2013년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워크샵' 모둠교사를 하면서 회원이 되었고, 2018년 9월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첫 번째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는 등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코리밀라에서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쓴다.


데리와 런던데리



여기는 데리/런던데리에서도 개신교 계가 사는 지역이다. 보도블럭 색이 영국 국기 색이다.


벨파스트에서 한참을 달려서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데리(런던데리)가 있다. 표지판에는 항상 Derry/Londonderry가 병기되어 있다. 두 이름 모두 도시의 공식 이름이다.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아일랜드 전체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 도시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북아일랜드 식민지 역사의 산물이다. 원래 이 도시의 이름은 데리였다. 북아일랜드 북부 얼스터 지방은 식민지 창설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얼스터 지방으로 스코틀랜드 신교 세력이 이주해왔고, 항구가 있던 벨파스트와 데리로 사람들과 물건이 오고 갔다. (이것이 후에 얼스터 지방이 아일랜드가 아닌 북아일랜드가 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식민 지배 속에서 런던데리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다. 지금은 데리와 런던데리라는 이름을 병기하여 사용하고 있다.


데리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이 도시를 부르는 방법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보통 개신교계에서는 '런던데리', 가톨릭계에서는 '데리'라고 부른다. '런던데리/데리'라고 두 이름을 한꺼번에 부르는 경우도 있다. 코리밀라에 있을 때는 이방인인 나는 꼬박꼬박  '런던데리/데리'라고 기나긴 이름을 불렀다. 물론 코리밀라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개신교 계이지만, 네가 런던데리를 데리라고 불러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런던데리는 너무 길지 않니?"

하지만 이방인인 내가 상대방이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지, 다른 커뮤니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런던데리' 또는 '데리'라고 하나로만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꼭꼭 두 이름을 함께 이야기했다.


다른 마을로 이사 가서 이름을 바꿨대


코리밀라에 있으면서 분단의 아픔을 가졌던 두 커뮤니티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중 종종 들었던 이야기는 이름과 억양에 관한 이야기였다. 북아일랜드 내에서 개신교계와 가톨릭계는 다른 이름, 다른 성, 다른 억양(Accent)을 쓴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코리밀라에서 누군가가 개신교계 아버지와 가톨릭계 어머니가 만나 결혼해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었다. 아일랜드계 이름과 영국계 성을 함께 쓰고, 아일랜드계 말투를 쓰는 개신교계 지역에 사는 자신. 어렸을 때 만난 사람은 그 친구 앞에서 이상하다는(It's weird)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가톨릭계에서는 게일어의 영향을 받은 이름을 많이 쓴다. 여자 아이의 경우는 Aoife, Niamh, Saoirse, Aoibhín, Kayleigh 등의 이름이 있고, 남자아이의 이름은 Conor, Seán, Pádraig, Daithi, Eoin 등의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은 대체로 철자를 보고 이름을 추측하는 것이 외국인 입장에서 힘들다. 코리밀라에 있으면서 센터에 체크인하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봐야 하는데, 이름을 듣고 목록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날 오기로 한 사람들의 이름을 미리 주변에 물어보고 공부해야 했다. 미국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자신이 미국에서 들어본 이름이 아니면 발음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Aoife는 우리말로 이파에 가깝게 발음하고, 유명한 아일랜드계 미국 배우의 이름인 Saoirse는 시얼샤에 가깝게 발음한다. Mc로 시작하는 성, O’로 시작하는 성들이 아일랜드 성이다. 그래서 처음 이름을 들으면 대체적으로 그 사람의 배경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가톨릭계 여자와 개신교계 남자가 만나서 결혼해서, 개신교계 마을에 가서 함께 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마을이 가톨릭계에 배타적인  마을이었다고 했다. 결혼하면서 남자 쪽 성을 따랐지만, 여전히 아일랜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때문에 마을에서 괴롭힘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이름을 영국식으로 바꾸고 살아가게 되었다.


억양은 개신교계와 가톨릭계 간에도 다르고, 사는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지역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 알기 때문에 억양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 느 쪽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북아일랜드 제1의 도시인 벨파스트 만 하더라도 서벨파스트에는 가톨릭계가 많고, 동벨파스트에는 개신교계가 많이 산다. 북아일랜드 로컬끼리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대체로 어떤 곳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북아일랜드에는 마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림들이 많다. 초록색으로 그려진 아이리쉬 풋볼은 가톨릭 계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같은 날 벨파스트 내 다른 곳에서 촬영한 사진. 영국 국기와 오렌지공 윌리엄 3세는 개신교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Protestant, Catholic, British, Irish and Northern Irish



북아일랜드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배경이 Protestant(개신교)인가, 아니면 Catholic(가톨릭)인가? 스스로를 British(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Irish(아일랜드인)이라고 생각하는가? Unionist(통합론주의자,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남아있기를 원함) 아니면 Nationalist(독립주의자, 북아일랜드가 영국 연방에서 독립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하기를 원함)라고 여기는가? 조금씩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지만 대체로 혼용돼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Protestant, British, Unionist가 같은 맥락에서 쓰이고, Catholic, Irish, Nationalist가 같은 맥락에서 쓰인다.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Protestant와 Catholic이다.


데리 걸즈 첫방송을 축하하며. 시즌 2 1화는 가톨릭 여학교와 개신교 남학교 간의 합동 캠프 이야기다. 코리밀라에서는 센터에서 찍을 뻔 했다는 이야기를 다들 했다.
바리케이드를 넘어선 친구들.  데리/런던데리 지역은 북아일랜드 내에서도 갈등이 심각했던 곳 중 하나이다.


영국 방송사 채널 4에서 히트를 친 유명 드라마 '데리 걸즈'가 있다. 1990년 후반에 데리 가톨릭 여고생을 다룬 드라마다. 올해 시즌 2까지 나왔고, 넷플릭스에서도 나왔다. 드라마는 유머스럽게 당시 데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정말 재미있어서 다 같이 기숙사에서 '본방사수'를 해가며 봤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소파에 기대서 다 같이 TV를 봤다. 시즌 2 1화에 주인공의 가톨릭 여자 고등학교와 개신교 남자 고등학교가 합동 캠프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캠프를 담당하는 신부님이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가톨릭계와 개신교계의 공통점을 물어본다. 분명 쉬운 질문이지만 아이들은 어렵다고 하며 차이점만을 대답한다. 교육을 같이 간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내뱉는 차이점에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올라는 당당하게 내뱉는다.



Protestants hate ABBA. 개신교 사람들은 ABBA를 싫어해요.



이 질문은 다음날 코리밀라 주방의 농담거리가 되었다.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ABBA 싫어해요?'라고 물어봤다. 데리 걸즈 시즌 2 첫 화를 본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코리밀라에서 하는 캠프에서도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을 던진다. 아직까지도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를 아일랜드인인지 영국인인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아일랜드인인지 영국인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 명은 당당하게 자신이 '북아일랜드인'이라고 대답했다. 다른 날 있던 강의에서 1998년부터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북아일랜드인'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특히 98년 성금요일 협정 (벨파스트 협정) 이후 세대들이 스스로를 '북아일랜드인'이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98년 이후 세대를 다룬 영상을 보면 sectarianism(분파주의)를 넘어서 북아일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코리밀라에 방문하는 친구들도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 캠프에서 청년 지도자 친구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친구도 김 없이 코리밀라 TOP3 질문을 던졌다. 1. 어디서 왔니? 2. 코리밀라를 어떻게 알고 왔니? 3. 북아일랜드 어때? 나는 북아일랜드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배우고 싶어서 여기로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서 배우고 싶다고? 우리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북아일랜드도 지금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도 함께 살아갈  사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다. 서로에게 배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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