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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Mar 12. 2020

8. 하지만 너네는 그렇지 않았어

2시간 정도 아이들이랑 프로그램을 해주지 않을래? 


새로운 아이들이 센터를 방문하고, 그 아이들과 며칠간 호흡하는 것은 즐겁지만 긴장되는 일이다. 특히 아이들이 억양이 센 마을에서 온다고 이야기를 들었다면. 혼자 아이들과 활동하기로 한 것도 긴장되는 일이지만, 억양이 억센 지역에서 온다고 하니 더욱 긴장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활동을 잘하려고 으쌰 으쌰 노력하지만,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는 활동이 힘들 때도 있다. 아이들은 내가 잘 안 듣는다고 생각하고 난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힘들다. 서로의 영어가 익숙하지 않을 뿐인데. 


자원활동가와 아이들이 함께 야외에서 프로그램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다른 캠프에서도 하는 야외활동으로 프로그램을 채웠다. 아이들과 활동을 한 날, 내 설명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이들이 활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아이들이 실내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2시간 동안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데… 궁여지책으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생각해냈다. 그림 그리기 퀴즈, 동물 울음소리 퀴즈를 했다. 그림 그리기 퀴즈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너도 나도 칠판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손을 든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아이들은 자유시간을 얻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이들은 아까 봐 둔 해적선을 향해 뛰어나갔다. 


너는 누구야?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이미 몇 달간 함께 해온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한결 편안해한다. 선생님은 계속 아이들에게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은 편하게 앉아서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대답한다. 약간 어려운 질문이면 자원활동가에게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다르게 생각해보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들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선생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내가 누군지 물어보는지에 따라 대답은 어떻게 바뀔까? 


정체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부활절 토끼 초콜릿을 먹어본 적 없다는 말에 아이들이 크게 놀랐다.


내가 서울에 있다면 나는 서울에 산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북아일랜드 시골에서는 서울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항상 했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낯선 것 같은 사람한테는 아시아에서 왔다고 했다. 누가 물어보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내 대답은 항상 달라졌다.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 친구들에게 한 번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센터에 미국에서 온 친구들이 참 많았다. 보면서 늘 신기했던 점은 이 친구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 '미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이야기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왔어요.'처럼. 반면에 나나 다른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자신의 나라를 이야기했다. 신기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서울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서울에서 왔다는 이야기 혹은 내 고향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 친구들은 미국의 어떤 주가 있는지 사람들이 모두 알 것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이 친구들에게 왜 미국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 "I am from USA." 대신 "I am from Boston." 같이 대답하냐고 물어봤었다. 각양각색의 대답을 내놓았다. 미국은 너무 넓어서 미국에서 왔다고 했을 때 본인과 정반대인 지역에 간 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일부로 특정 지역을 이야기한다는 대답, 주마다 특색이 있어 본인의 정체성이 미국인보다는 어디 어디 주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역사학을 공부했던 친구는 미국이라고 대답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며 추론하기도 했다. (비슷한 이유로 외국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이 서로 어디에 사는지 물어봤을 때, 서울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서울을 붙이지 않고 특정 구를 이야기하는 것에 놀랐다. 지방에서 온 사람은 대부분 시나 도로 말했는데...)


다시 캠프로 돌아와서, 선생님은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답할지 물어봤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계속 고민한다. 다른 아이들의 대답을 따라 하기도 한다. 잠깐 프로그램에 놀러 온 자원활동가는 부모님이 모두 북아일랜드 출신이지만 다른 곳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다. 그 친구에게도 북아일랜드에서 원래 살던 곳에서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어본다. 캠프에서 정체성에 답하던 한 아이가 왜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대답했냐는 질문에 답한다.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하지만 너네는 그렇지 않았어  


센터에 있을 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아일랜드계와 영국계의 갈등을 다룬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다른 배경의 두 아이가 만나며 겪은 일을 다룬 이야기였다. 소설에서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다른 배경의 아이를 만나지 말고,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은 위험하기 때문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 이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들은 우리를 힘들게 했던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어울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두 아이는 소설의 제목처럼 '분단된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다른 친구를 돕기 위해 서로 만나서 움직인다. 


소설 'Divided city'의 배경이 된 글래스고 


여기 아이들도 어른들로부터, 사회로부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이들이 비밀 고백처럼 배운 편견에 대해 털어놓는 시간이 있었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걔네들은 그렇지 않았어." 만남의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리밀라에서 갈등이 한창 심하던 70-80년대에 다른 두 곳의 아이들이 센터에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일단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함께 놀게 했다고 한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들은 캠프에서 친해져서 도시를 가로질러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했다. 


지금 일하는 어린이어깨동무도 1996년 '안녕? 친구야!' 캠페인을 시작으로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에게 그림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림 인사가 계속되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직접 만나는 날까지 왔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지금까지 42명의 어린이가 북녘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쯤 더 많은 아이들이 서로 만나서 "걔네는 그렇지 않았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by 파랑

2013년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워크숍' 모둠교사를 하면서 회원이 되었고, 2018년 9월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첫 번째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는 등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코리밀라에서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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