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밀라에 다녀온 지가 벌써 1년이 지났다. 브런치에 쓸 글감은 코리밀라 자원활동을 마무리할 즈음에 대충 정해놓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왜 그 소재를 선택하였는지, 어떤 글을 쓰려고 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때 찍은 사진이나 쓴 일기, SNS를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다. Facebook에서 1년 전 게시물 알람이 왔다. 그때 그 대화를 나눈지도 1년이 지났구나. 오늘은 코리밀라에서 의미 깊었던 대화를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코리밀라에서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디서 왔는지, 코리밀라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다. 3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본관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직 다른 그룹이 도착하지 않았는지 식당은 한산했고, 한 그룹에서 오신 노부인과 단둘이 앉았다. 그분은 내가 캠프에 온 참가자라고 생각했는지, 어떤 일로 코리밀라에 왔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웃으면서 코리밀라에 살고 있는 장기 자원활동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분은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Where is your home? Belfast? 집이 어디예요? 벨파스트?"
나는 웃으며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고, 그분도 역시나 북아일랜드에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그분이 잠깐 고민했던 것은 내가 '이방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보지 않은 것은 질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코리밀라에 오고 나서 첫 번째 캠프(심지어 대규모 가족캠프였다)에서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5살 여자아이랑 말이 통하지 않아서 실랑이하고, 미술실에 가서 찰흙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것도 못 알아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분이 오히려 말을 빠르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셔서 더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쉬는 시간에 다른 자원활동가와 함께 잠깐 걷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캠프의 두 번째 날. 저녁은 파티와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 드럼 강의를 들으러 갈 수도 있었고, 삼삼오오 악기를 들고 나타나 밴드 연주를 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해 나는 불안해졌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는 나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나 보다. 나와 함께 청소년 프로그램에 있던 외부 자원활동가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분은 유쾌한 할아버지셨는데, 아이들 프로그램에서 작곡까지 할 정도로 다재다능하신 분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매년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분이었다.
잠깐 나에게 자리를 앉으라고 한 다음에 대화를 시작했다. 코리밀라로 새로 와서 생활은 어떤지, 첫 번째 캠프는 어떤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다정하게 물어보셨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프로그램 표에는 all hands on deck(전원 집합)이라고 있어서 어디에선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아버지는 다정하게 '있고 싶은' 자리를 찾으라고 했다. 모든 곳에는 내가 있을 자리를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있어야 하는 곳’을 찾기보다는 ‘있고 싶은’ 곳은 찾으라고 해주셨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동의를 구하고 포옹하고 격려해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코리밀라에서 있었던 내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찾아 헤맸다. 캠프에서 애들과 말을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내가 굳이 할 필요 없었던 설거지를 도맡아서 했고, 모두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혼자서 모두가 미뤘다고 생각한 정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때의 내가 진짜 있고 싶었던 자리는 어디였을까.
코리밀라에서는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할 수 있다고 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의 용기와 노력을 칭찬한다는 말에서부터 오늘 옷이 잘 어울린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칭찬이 낯간지러웠던 나는 칭찬을 항상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른 한국 분도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후에는 한국 사람의 특징이 칭찬에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농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굉장히 부끄러웠는데, 10월 어느 아침 조회에서 칭찬을 받았던 적이 있다. 지난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태프 중 한 명이 너는 우리의 STAR라며 나에 대한 칭찬을 꺼냈다. 그리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며 눈물까지 흘리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자리 내내 도망치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도 너를 칭찬하고 싶지만, 눈물까지 흘릴 일은 아니라고 농담했다. 당시에 나는 세명밖에 없던 비영어권 출신 자원활동가(그중 두 명이 유럽 친구였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 반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용기를 내서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살던 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다.
내가 이런 칭찬을 들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내가 코리밀라에 오기 전에는 누군가한테 작은 칭찬을 해본 적이 있었는가도 의문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여기 기억을 가지고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그때의 다짐을 다시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