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다시 읽기 16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가 놓치고 있는 평화적 가치를 발견하여 글로 쓰고, 함께 읽고 소통하는 실천을 통해 평화적 가치와 담론을 공유하고, 우리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피스레터 다시 읽기>에서는 피스레터에 기고되었던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나 평화교육센터 블로그(https://peacecenter.tistory.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한국에서 러시아 미술은 그리 익숙지 않다. 서양미술사를 소개하는 책에서도 우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의 미술을 주로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문화적인 편식이 강한 편이고, 특히 예술분야에 있어서 공산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러시아야 말로 수 없이 반복된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평화와 반전의 시각에서 러시아 미술은 눈여겨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바실리 베레시차긴(Vasily Vereshchatin)은 19세기 러시아에서 활동한 반전화가였다. 우리는 모네, 마네, 고흐 등 수많은 19세기의 서양화가들을 알고 있지만 평생에 걸쳐 반전화를 그린 그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한국에 잘 소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국경지대, 그리고 전쟁을 담고 있으며 희생자와 승리자 모두의 입장에서 그림을 써 내려갔다. 그는 피땀 흘려 일한 노동의 대가를 전쟁을 위한 세금으로 빼앗겨야 했던, 그리고 소중한 아들과 아버지를 싸늘한 주검으로 맞이해야 했던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대변했던 화가였다.
베레시차긴은 10대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해군으로 복무를 하였다. 그리고 투르키스탄 전쟁을 비롯한 발칸전쟁, 러시아-터키 전쟁 등 여러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해군사관학교 당시 우수한 학생이었기에 주변에서는 그가 장교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군사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서 야간으로 그림을 배우다가 사관학교 졸업과 함께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정식 주간으로 입학하게 된다.
바실리 베레시차긴, 『전쟁 예찬』 (1871)
<전쟁 예찬>은 그가 참전했던 전쟁을 주제로 한 연작 ‘투르키스탄 연작’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는 20세기 반전 포스터에 수 없이 사용되고 또 사용되었을 정도로 단순 명료하게 반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에는 해골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맞이해 주는 것은 굶주린 까마귀들 뿐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나타내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종종 액자에 문장을 기입하곤 했는데 <전쟁예찬>의 액자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위대한 정복자에게 바친다”라는 문구를 적음으로써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비참함을 불러일으킬 뿐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쟁에서 승리의 상징은 적장의 목을 베어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살아있던 죽었던 상관없이 말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목을 전시하듯 높게 쌓아 올린 모습, 그리고 오른쪽 위에 보이는 누군가가 살았던 부서진 집은 너무나도 참혹하지만 하늘은 푸르르기만 하다.
바실리 베레시차긴, 『They celebrate』 (1872)
바실리 베레시차긴, 『죄수들의 휴식장소』 (1879)
적군의 목을 베어 걸어놓는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비난은 다음 해에 그린 <They celebrate>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가운데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인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결과를 알리고 있는 모습이다. 편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낙타나 백마의 등에 탄 사람들도 있고 앉아있는 개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자리를 축하하고 있는 중이다. 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그 과정과 희생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편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로 하얗고 긴 장대가 우뚝 서 있고, 그 위에는 적의 머리가 승리의 상징처럼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승리자들은 전쟁의 결과를 축하하지만 전쟁에서 포로가 된 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1878년부터 1879년까지 1년에 걸쳐 완성된 <죄수들의 휴식장소>는 가릴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주저앉아 눈보라를 맞고 있는 죄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목처럼 그들은 정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눈보라에 버려진 고장 난 수레바퀴는 마치 고장 나고 그릇된 역사와도 같다.
베레시차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화가로서 전력을 다해 전쟁을 비난하지만 그것이 효과적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정면으로 맞서 가차 없이 비난한다.” 러시아-터키 전쟁을 향해 비난의 시선을 던진 그를 당시 알렉산더 2세는 ‘인간쓰레기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언급했다. 베레시차긴은 단념하지 않고 러시아를 떠나 전 세계를 떠돌며 반전 작품들을 그려나갔고, 결국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받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베레시차긴의 시대와 같은 대규모 전쟁이나 학살은 부재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타인을 짓밟은 대가를 과시하는 인간의 잔인함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하며 그것의 치열함은 그 시대의 전쟁과 같지 않은가.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