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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Aug 10. 2020

우리 모두 “어깨동무”할 것입니다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 정진헌 (3)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가 놓치고 있는 평화적 가치를 발견하여 글로 쓰고, 함께 읽고 소통하는 실천을 통해 평화적 가치와 담론을 공유하고, 우리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피스레터 다시 읽기>에서는 피스레터에 기고되었던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나 평화교육센터 블로그(https://peacecenter.tistory.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피스레터 통권 16호(2018년 12월 19일 펴냄)에 기고된 글입니다.  


[시선 |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우리 모두 “어깨동무”할 것입니다

독일에서의 윤이상 구명운동 50주년 기념 평화 토크 콘서트


11월 24일 오후, 스산한 하늘이 금방이라도 겨울비를 뿌릴 듯했습니다. 독일에서 흐린 하늘과 가벼이 내리는 비는 흔한 겨울 풍경이지만 큰 행사를 위해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혹시 힘드실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 대신에 미리 약속하셨던 많은 분들이 속속들이 윤이상하우스로 도착하셨습니다.


독일에서의 윤이상 구명운동 50주년 기념 평화 토크 콘서트. 이 행사는 지난 호 평화의 편지에서 소개해 드렸듯, 1968년 독일을 중심으로 전 세계 유명 음악인 181명이 윤이상 구명을 위한 탄원 운동에 서명하고 언론과 한국 정부에도 공개적으로 보낸 “Appell fűr Isang Yun”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즉, 1967-69년 사이 박정희 정권하에서 자행되었던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대해 초국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며, 향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문화예술(인)의 역할을 미래지향적으로 논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과 그 후대 작곡가의 작품 공연까지 더해져, 지식인은 지식으로, 예술가는 예술로, 역사를 넘나들며 지성과 감성을 자극한 종합예술 행사였습니다.


발표와 좌담, 연주 등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기라성 같은 석학과 음악인들이 독일 도처와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짧은 준비 일정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참가해주었습니다. 장소가 좁아 50명만 모실 수 있는 곳인데도, 70여분이 넘는 한국인, 독일인, 학자, 음악인, 젊은 층, 노년 층 모두 빼곡히 끼어 앉아 장장 7시간 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중에는 이 행사의 의미를 높이 인식한 법무법인 양재 소속 변호사 세 분이 멀리 서울에서 날아오셨습니다.


본 행사는, 개회 특별 공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칼스루헤 음대 한가야 교수의 피아노와 소프라노 서예리 선생께서 기대에 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제는 윤이상하우스 큰 행사의 타이틀곡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는 윤이상 선생님의 50년대 초기 가곡에 이어, 재독 작곡가 박영희 선생님의 피아노곡, 그리고 제주 4.3 항쟁의 망명인으로 일본에서 사셨던 음악인 한재숙 님(한가야 교수의 부친)의 가곡 망향제주는 이 행사의 의미를 감성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귀빈 소개를 하자니 관객 모두가 가족이자 귀빈이셨기에 적지 않은 분들을 한꺼번에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어, 주독대한민국대사관 정범구 대사님께서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셔서 행사의 중요성을 되새겨주시는 축사를 해주셨고,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독일대사를 역임하신 도리스 헤르트람프 (Doris Hertrampf) 여사께서도 독일과 남북한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주신 윤이상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는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재독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에서는 다른 일정상 대사께서 참석하지 못했으나, 향후 협력사업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1부 기억과 증언 세션은, 재독 한국인의 관점과 경험, 그리고 독일인의 그것들을 공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이신 이유재 교수께서 "동백림 사건과 한국을 위한 초국가적 민주화 운동"이라는 논문 발표를 통해 냉전의 경험이 달랐던 시공간적 맥락의 중요성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이 막 시작된 무렵에 독일 유학길에 오르셔서, 이후 대표적인 재독 철학자이자 통일운동가로 윤이상 선생님과 오랜 친분을 가지셨던, 송두율 교수께서 "내 체험공간 속의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주제로 역사적 사건을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잠시 환기시키는 차원이자, 동백림에 대한 예술적 감성을 미술작품으로 공감하고자, 이응로 화백의 옥중화를 감상하였습니다.


1부의 두 번째 세션은, 독일분들의 발표를 경청했습니다. 준비된 책상 위에 오래된 원본 문서들을 올려놓은 독-한협회 회장 우베 슈멜터(Uwe Schmelter) 박사는, 동백림사건이 터진 1967년도 당시의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역사 문화적 전환기(68운동)에 대한 독특한 시대적 배경과 동백림 사건으로 촉발된 독일-한국 간 연대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의 제자 중 한 분이셨던 어빈 코흐-라파엘(Erwin Koch-Raphael) 교수는 간결한 발표를 통해 윤이상 선생님과의 만남과 옥중 작품 "나비의 미망인" 관람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수십 년간의 경험이 녹아있기에 그 모두를 담기에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았으나, 참으로 의미 있는 지적인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2부로 넘어가기 전, 앞서 감상했던 이응로 화백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자,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 박계리 자유대 초빙교수께서 이응로 화백의 삶과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셨는데, 이로써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늘의 화두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하여, 2부 콘서트는 예술을 통한 시대적 감성을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윤이상하우스 상주음악가 정은비 타악기 연주자가, 그리스에서 활동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크제나키스의 레봉을 힘차게 연주하여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이어서 윤이상 선생님 작품의 정통 해설가이신 국제윤이상협회 볼프강 슈파러 회장께서 윤선생님의 옥중 작품인 "률 (Riul)"의 음악적 특성에 대해 강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윤선생님의 제자인 토시오 호소가와 선생의 Memory of Isang Yun을 트리오 Sonia Achkar, Martin Funda, Jonathan Weigle의 섬세한 연주로 감상했습니다. 이어서 지난여름 레지던스 펠로우로 지냈던 작곡가 양이 룩군이 동백림 사건의 피해자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으로 만든 가곡을 메조소프라노 민수연(Su Yeon Hilbert)님이 불러 감성의 깊이를 더해주셨습니다. 이런 감성의 물결에 더해, 윤이상 선생님의 률(Riul)을 악보와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느덧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렸고, 우리는 원래 약속한 일정보다 더디게 가고 있었습니다. 하여 3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문화예술의 힘 좌담 세션은 시간을 줄여서 진행하되, 발언자와 관객들이 함께 깊이 있는 논의를 해나갔습니다. 우베 슈멜터 박사의 사회로, 정은비(Eunbi Jeong), 성악가 홍일(Hong Il), 다름슈타트 음대 코드 마이저링(Cord Meijering) 학장께서 개인적 경험과 음악의 시대사적 역할 및 중요성에 대해 창의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윤이상하우스를 통해 남북한 음악인들이 소통함은 물론,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을 함께 연주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공유하였습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한 얘기와 공연으로 열정 가득한 7시간여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교민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주신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서로 사진도 찍고, 더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음악과 자기 삶에 대해 얘기하는 정감 있는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수고해 주신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먼저, 베를린 행사를 위해 좋은 의견과 더불어 재정 지원을 해주신 한국의 윤이상평화재단을 비롯, 한국의 강원랜드에서 선뜻 협찬을 해주셨고, (사)어린이어깨동무도 기부금을 보내주었습니다.


베를린 현지에서도 후원이 이어졌습니다. 한국문화원에서 가능한 재원을 모아주었고, 베를린기독교한인교회에서는 동시통역기 무료 대여에 후원금까지 얹어주셨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이 제2대 회장을 역임하셨던 재독한인총연합회(총회장 박선유) 역시 후원금을, 그리고 윤이상 선생님과도 오랜 동지셨고 저희 행사 때마다 손님들을 위한 음식과 주류 준비는 물론 상차림까지 해주시는 한민족유럽연대(의장 최영숙) 선생님들은 이번에도 든든한 후원자셨습니다. 신성식 선생님은 낙엽흡입기계를 가져오셔서 베란다 청소를 손수 해주셨고, 자유대학교 동료 학자들과 학생들, 멀리 다름슈타트에서 온 작곡 전공 이어진 양 등이 봉사해주었습니다. 독일 최고의 동시통역사인 교포 2세 이지예 님은 다음 날 새벽 UN회의 통역을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뜻깊은 행사에 봉사하겠다며 텍스트도 없는 발표와 좌담 등을 하루 종일 통역해주었습니다.


이렇듯 이 행사는 많은 분들이 뒤에서 애써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 동안 스크린막 뒤 음향실에서 녹음과 기술적 문제를 담당해 준 승환(John Lee)씨와 야콥(Jakob Prell)에게 감사하고, 이틀 동안 와서 음악홀 정리와 마당 쓸기 등 궂은일을 묵묵히 해준 철학도 정지원 군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무엇보다, 행사 준비부터, 콘서트 기획, 홍보와 마무리까지 열심히 일하다 몸도 크게 상한 정은비 상주음악가에게, 그리고 다시 한번, 애정과 관심으로 참여해주신 발표자와 음악인들께 큰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윤이상 선생님께서 많이 기뻐하시리라 믿으며, 이제부터 동백림 사건은 재조명되고, 한 맺힌 피해자분들의 명예가 제대로 회복되어, 그 과정에서 남북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예술을 통해 한 차원 높게 진행되도록, 이 행사에 함께 해주신 우리 모두 “어깨동무”할 것입니다.


정진헌ㅣ어린이어깨동무 간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 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와 문화학부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윤이상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저서 및 공저로는, 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2015), Building Noah's Ark (2015), 무엇이 학교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2015), 한국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2007), 북한에서 온 내친구(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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