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랄산맥 산맥, 얀덱스 어플, 폭우, Ким Хёнгук, AH6
자신의 차선을 지켜내라 (Держи свою полосу)
Посреди Уральских гор, «Юрюзань». 우랄산맥 유류잔 마을. 01.08.2019
오늘은 우랄산맥을 넘게 된다.
오후 12시 21분. 얀덱스어플에서 날씨를 체크해 보았다.
10분 단위로 실시간의 정보와 만날 수 있으며 지도 위에 그래픽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쉽게 눈에 들어온다. 내가 달려가야 할 방향인 나베레쥐느예 첼니로부터 두툼한 비구름 함대가 세력을 형성해 이동해오고 있다. 다른 스마트폰으로 구글맵을 펼쳤다. 첼랴빈스크에서 우랄산맥 넘어 우파까지는 417킬로미터 정도이다.
예카테린부크-우랄산맥- 페름 구간은 이미 자료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2019년에는 우랄산맥 남쪽 구간을 선택했다.
2014년에는 우랄산맥을 넘으면서 첫눈을 경험했다. 이곳에서도 한 여름인 7월 31일이었다.
1996년부터 인연을 맺은 우랄산맥은 내게 추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첼랴빈스크에 2박 3일을 체류하면서 음식에 신경을 썼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추위를 대비해서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뱃속에 저장해 두었다.
다시 야후의 날씨 어플을 열어보았다.
우파는 오늘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비가 내리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정오를 넘겨 출발하는 것은 우랄산맥에서 하룻밤을 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함께 방을 사용하고 있는 학생에게 펜싱을 들고 자세를 취해달라고 말해보았다. 그는 어색한 듯이 칼을 뽑아 들었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꾸려진 짐은 4개의 뭉치로 정리해 놓았다. 가슴 앞쪽으로 메고 다니는 작은 배낭까지 하면 5개이다. 큰 배낭을 등 뒤로 매고 양쪽 어깨에 세 개의 짐을 분산해서 걸쳤다.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에는 사이클 유소년 선수들이 자전거를 만지고 있었다. 들고 있는 짐과 부딪히지 않도록 몸을 옆으로 살짝 틀면서 지나쳤다.
카운터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섰다. 1층으로 내려가자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현관 입구로부터 몰려들어오기 시작한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더 많은 아이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곳은 이박삼일 동안 내게 만족도가 높은 숙소가 되었다.
모터바이크 위에 짐을 하나씩 묶어 올려갔다.
출발이다. 시동을 걸고 핼맷 쓴 머리를 들어 올렸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도시에 달려들어왔던 길을 이어받아 앞으로 달려가다 네비의 표시를 따라
왼편으로 방향을 돌렸다.
첼랴빈스크도 다른 대도시들처럼 크게 네 개의 길이 지나가는 교차로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도심 외각을 한 바퀴 빙도는 우회도로가 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215킬로미터 거리에 또 하나의 우랄산맥 관문인 예카테린부르크가 있다.
이 길은 М5 또는 АН7(아시안 하이웨이 7호선)이다.
М5도로는 첼랴빈스크부터 AH6(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로도 불리며 우파를 거쳐 사마라와 라쟌 그리고 모스크바까지 같은 이름으로 사용된다. E30번 도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첼랴빈스크에서 이심과 옴스크로 이어지는 길은 E30 또는 AH6로 불린다.
첼랴빈스크에서 우랄산맥을 넘어 우파까지의 길은 여러 개의 이름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AH6(아시안하이웨이)와 M5(러시아연방도로)와 E30(유럽도로)이 그것이다.
우파에서 내가 선택하는 길은 카잔과 니즈니 노보고라드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이 구간부터 AH6과 E30이라는 이름은 빠지게 되고 M7 또는 E22번 도로가 된다.
첼랴빈스크라는 도시가 끝나는 것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말뚝에 붙어 있다.
가즈프롬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웠다. 옥탄가가 두 종류뿐이다. 나는 95짜리를 선택했다.
우파를 목적지로 내비게이션을 다시 작동시켰다.
출발하자마자 커다랗게 서있는 공사표지판과 만난다.
첼랴빈스크에서 우파와 사마라를 거쳐 모스크바에 이르는 M5도로 전체구간에서 일정기간 동안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가슴속 주머니에 들어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쵤영한다. 기본이 세장씩으로 이루어진다. 앞의 표지판과 표지판을 포함한 앞쪽 길 전체 사진 그리고 백미러를 이용해 뒤편의 풍경을 찍게 된다. 옆으로 보이는 풍경은 필요할 때만 추가시킨다.
오후 1시 26분, 숙소로부터 12킬로미터 지점이다.
바이크가 달려 나가자마자 도로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인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타고 왔을 호른 덮인 트럭 뒤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터바이크를 멈추고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한 명이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호감을 표현한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모터바이크와 여행자를 향해 소년처럼 환한 웃음을 날기고 돌아간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길이다. 조금 더 달려 나가자 이 길이 아시안 하이웨이 6호 선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AH6라는 이름으로 도로 가운데 분리대 위에 세워져 있다.
첼랴빈스크 시를 한 바퀴 돌면서 우회하는 외곽도로는 시내 중심으로부터 25킬로미터 정도가 떨어져 있다.
본격적으로 연방도로에 들어섰다. 광천수 이미지를 조형물로 만든 커다란 광고판이 도로 한편에 서있다.
첼랴빈스크 숙소로부터 104km 지점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꾸면 미아스(Миасс)로 들어가는 길이다. 두 개의 길 사이에 서 있는 조형물에는 커다란 말코손바닥사슴 이미지가 붙어있다. 1773년, 우랄산맥 안에 만들어진 작은 도시이다.
다시 35킬로미터를 달려 나갔다. 준평원 지형에 가까운 남부 우랄 구간을 선택했음에도 역시 춥다.
오후 4시 5분. 휴게소가 눈에 보여 멈추었다.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풀어주기 위해서이다. 잠깐 걸어주기 위해 도로 쪽으로 걸어 나갔다. 날개 달린 말, ‘천마’ 이미지가 붙어있는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즐라토우스트(Златоуст)이다. 러시아 최초의 철. 구리 공장이 이 도시에 만들어졌었다. 강철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차르(러시아 황제) 군대의 검을 만들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사용되고 있는 천마상은 이반 부수에프(Иван Бушуев)의 작품이다.
감자와 물고기 튀긴 것과 샐러드를 접시 위에 담았다. 러시아의 일반 식당은 대개가 뷔페식이다. 주문자의 선택에 맞추어 식당 직원이 접시에 담아준다. 러시아에서도 항상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표현해야 한다.
졸음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커피는 셀프기계에서 뽑아왔다.
건물 밖의 모터바이크를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나이 드신 분이 말을 걸어온다. 모터바이크 몸체에 적혀있는 글씨들을 보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를 가는지 누구든지 알 수 있다. 자신은 모스크바에서 왔고 직업이 기자라며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한다.
아시안하이웨이 6호선에 대해서 설명하고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암스테르담에 이르는 대륙의 길을 반복적으로 횡단하는 이유를 말했다. 2010년에 완공된 러시아연방도로의 완성이 프로젝트의 배경이 된다고 러시아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그의 일행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길 위나 마을과 도시에서 만나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나의 대륙횡단 여정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왜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지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모터바이크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은 흙먼지투성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레 떼들로 인해 온전할 날이 없는 피부와 매일 맞게 되는 비와 시베리아의 강렬한 햇빛과 자외선으로 인해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은 노숙자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런 내 모습이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꿈이 된다. 실제로도 그들은 여행을 많이 한다. 겨울이 긴 러시아에서 여름은 휴가철을 의미한다. 자전거나 자동차와 기차 심지어는 두발을 사용해서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큰지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을 진정한 멋으로 느끼는 러시아 사람들을 나는 좋아한다. 무뚝뚝한 모습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시야가 넓다. 지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후를 체함 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땅이 넓고 다양한 사람들과 민족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차림의 여행자마저도 자신의 가슴을 열어서 안아주고 축복해 주는 열린 마음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항상 내게 “Удачи- 우다치”라는 말로 여행자의 행운을 빌어준다. 어느 날부터 인가 나도 그들에게 이런 말로 축복을 나누기 시작했다. “Бог Любит Вас”,“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오후 4시, 모터바이크에 시동을 걸고서 구글 맵을 펼쳐보았다. 우파까지 277킬로미터이다.
대륙의 길에 대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동거리가 길지 않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는 순간, 나는 이 끝없는 길 위에 갇혀버리게 된다.
1996년, 처음 유라시아 횡단할 때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가져왔다. 사방이 터져있고 길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대륙의 낯선 길 위에서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동쪽으로 이동 중인 비구름의 속도를 예측해 보면서 우랄산맥에서 하룻밤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했다. 초대형 화물차량의 행렬은 우랄산맥을 넘는 길 위에서도 이어진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달려 나가자 다시 휴게소가 나온다. 기념품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상점 앞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늘어서 있다. 추워서인지 변형된 사모바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우랄’이라는 자연이 제공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안에는 광석으로 만든 목걸이들이 있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서 짐승털로 만든 신발도 있다.
기념품점을 나오자마자 기온은 더 내려가고 하늘은 짙은 회색빛이다.
조금 더 달려가다 바이크를 멈추었다.
비 냄새가 느껴진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동의 속도가 너무 늦어졌다. 오리털 파카를 입고 그 위에 비옷을 껴입었다. 두 개의 스마트 폰을 각각의 비닐 안에 넣고 내비게이션도 비닐 캡을 씌웠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비가 거세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구 쏟아진다. 정오에 나베레쥐늬예 첼니를 지나던 비구름이 370Km를 달려 벌써 우랄산맥까지 이동한 것이다.
주변의 구름들과 합쳐지면서 이동하는 비구름의 속도는 엄청 빠르다. 나의 경우 비구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시속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려대야 몸에 물을 묻히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마주편으로부터 달려오는 비구름은 어찌해 볼 수가 없다.
기상예보를 확인하지 않고서 얼마만큼의 크기인지는 경험과 느낌으로만 예측해 볼 수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면 비를 맞기 전에 길 위에서 만나는 숙소에 들어가 자료들을 정리했다.
10킬로미터, 20십,30십,40킬로미터.., 계속 비가 내린다. 이런 빗속에서 모터바이크는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다.
이미 화물차들에게도 따라 잡히고 있다.
마주 달려오는 초대형 화물차로부터 튀기는 강한 물세례를 피하기 위해 모터바이크를 도로 가장자리로 붙여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SUV가 내 자리로 달려들어왔다. 앞에서 달리는 대형 화물차의 뒤를 따라 자동차와 모터바이크가 하나의 차선에서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포트홀이 나타났다.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서 내가 도로 위의 구멍을 피할 수 있는 방향은 오른편뿐이었다.
깜짝 놀라 도로 밖으로 벗어났고 곧바로 자갈밭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물 웅덩이를 다시 만났다. 울퉁불퉁한 자갈길 위에서 모터바이크가 넘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이 캄캄했다.
핸들을 움켜쥐고 있는 손이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났다. 마구 전해져 오는 진동 속에서 겨우 핸들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간에 스쳐갔다. 모터바이크는 단 한 번의 사고로도 큰 부상과 상처를 가져온다.
기도하면서도 어떻게 넘어져야 할지 자갈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물웅덩이로 들어간 앞바퀴가 커다란 자갈들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구 흔들리는 모터바이크의 핸들 위에 손만 얹혀놓고 있을 뿐이었다. 내 경험과 판단으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면
나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앞이 캄캄해졌지. 모터바이크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돌 밭 위에 어떻게 넘어져야 부상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을까 정도로 생각만 해보는 것이었어. 아무리 생각해 본다고 해도 달리는 바이크가 넘어지면 부상은 필수인 거잖아.
모든 것이 이렇게 끝이구나라고 생각할 때 물웅덩이에 빠져 있던 모터바이크의 앞바퀴가 울퉁불퉁한 돌들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엑셀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뒤에 실린 짐으로 인해 모터바이크는 뒤집혀버리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뿐이었어.
그리고 물웅덩이를 빠져나왔지’.
“모터바이크가 나를 살린 거야”라고.
모든 사고는 순간이다.
비가 쏟아지는 자갈밭 위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벗어나는 과정 또한 불과 몇 초가 흘렀을 뿐이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충격은 컸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고백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나에게 여러 가지 우울한 감정들이 함께 몰려왔다.
몇 킬로미터를 더 달려 나가자 비구름지대를 벗어나게 되었다.
비구간에 대한 메모를 간단히 정리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모터바이크를 다시 움직였다.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비옷을 입었음에도 온몸이 젖은 상태, 신발 속은 빗물로 가득 차있었다.
급속도로 추위와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기도를 시작해
해 질 녘, 빈 들에 서있는 것과 같은 나의 가난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표현했다.
유류잔(Юрюзань)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첼랴빈스크로부터 24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우랄산맥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일만 명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은 입구로부터 십오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입구 주변에 화물트럭운전자들 대상으로 하는 상점과 정비소, 트럭정류장 등이 몰려있다.
하나뿐이어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낡은 숙소로 찾아들어갔다. 숙소 주인에게 따뜻한 물이 나오는지를 먼저 물어보았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짐들을 매고 이층으로 연결된 나무 계단을 오르내렸다.
2019년 8월 6일 오후 6시 40분.
우랄산맥의 한가운데에 있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