Интервью газете «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의 인터뷰(모스크바)- 탐험가김현국의 Trans Eurasia 2023
(Интервью газете «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 (Москва) – Исследователь Ким Хён Гук, Trans Eurasia 2023 )
9월 27일. 오전 열 시 30분.
하나님 말씀보고 노트에 어제 하루 일 정리하다가 기도하고 밖으로 나옴.
이곳은 러시아 얀덱스 택시 운전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세차장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가 있는 주차장이다.
식당과 세차장, 운전사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다.
9월 26일 밤.
10:50분에 모스크바에 들어왔다. 시내 중심부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내비게이션이 무리 없이 잘 데려다주었다.(모스크바 시내 중심부는 강한 전파장애로 인해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는다.)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는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신문사와는 철길을 사이에 두고 70미터 떨어져 있는 세차장의 여유 공간에서 차박을 했다.
9월 27일.
오전 10시 40분, 빠른 걸음으로 어젯밤에 봐두었던 꽃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통역하시는 분의 동선을 체크했다. 먼저 선택했던 꽃을 내려놓고 백합으로만 이루어진 꽃을 선택했다. 러시아인의 꽃 사랑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추운 나라여서 상대적으로 꽃가격은 비싸다. 그래도 오늘의 인터뷰는 나에겐 일이니까.
오전 11시.
정문에서 통역을 만나자마자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부편집국장과 연합신문 기자가 마중 나왔다.
신분증 보여주고 출입증을 밟는 절차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의 커피숍 등을 제외하고는 건물 전체가 콤프와 직접 관계된 공간이다. 미디어그룹이라는 간판아래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라는 이름이 있고 아래에는 신문과 라디오, 사이트라고 쓰여 있다. 가스프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너지 기업인 ECN에 소속된 ‘미디어 파트너’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같은 이름으로 러시아 최대 출판사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를 가지고 있다.
9월 27일.
야후와 얀덱스에서 제공하는 각각의 날씨 어플을 열어보았다. 크라스노야르스는 오전 6시 온도가 영하 3도로 떨어져 있다. 마음이 바빠졌다. 러시아의 추위는 한국과 다르다. 러시아의 눈은 한국의 눈과 다르다. 눈 안에 수분이 거의 없어서 눈길을 걷기가 무척 힘들다. 마치 사막의 모래 위를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자동차도 빗길을 운전하는 것보다 몇 배가 더 힘들다. 이것은 정해진 무비자 기간 안에 러시아를 횡단하는데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9월 27일.
오전 11시로 약속된 콤프와의 인터뷰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미리 주고받는 질문지 없이 즉각적인 형식이었다. 하루 전 26일, 나는 모스크바와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르제프시 외곽, M9, ‘발틱’ 연방도로변 휴게소에 있었다. 지난여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의 이르쿠츠크 지부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을 맡았던 다샤가 지부장 올레샤에게 나의 안부를 전했고 올레샤는 나의 바람을 콤프 모스크바 본사에 전달했다.
나의 프로필이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6,000킬로미터 거리의 이르쿠츠크로 넘어갔고, 다시 이르쿠츠크로부터 6,000킬로미터 거리의 모스크바로 전달되었다. 불과 세 시간 만에 인터뷰가 결정되었고 날짜가 잡혔다. 도중에 나의 요청으로 하루 앞인 9월 27일로 날짜가 바뀌었고 당일 오전 11시에 콤프 스튜디오 b에서 인터뷰가 진행되기로 했다.
초콜릿은 기자이자 공동진행자인 미하일이 받고 꽃은 메인 앵커인 마리야 바체니나가 받았다.
러시아에서 꽃이 가지는 힘은 상당하다. 마리야도 진심으로 기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누가라는 이름을 가진 통역에게도 너무나 신뢰가 갔다.
베를린에서는 인터뷰 당일에 통역이라는 사람이 약속장소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날 수 있어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나를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었다. 그것도 주독 한국대사관에 자신의 이름을 통역으로 올려놓은 사람이었다.
처음 만남에서 상대방의 호감을 얻어낼 수 있는 꽃을 구입하는 것과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통역을 구하는 것에 대해 나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곳, 다른 나라에서의 인터뷰에서처럼 상대방이 나의 대륙횡단을 단순한 가십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유럽이나 러시아인들은 국경을 넘는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인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것을 탐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선입견들을 깨뜨리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결국 오늘도 나의 유라시아 대륙횡단 이야기는 러시아에서도 인정이 된 듯하다.
첫 만남부터
꽃으로 상대방의 호감을 이끌어내고
인터뷰 장소가 이루어질 장소 부근에서 차박을 하면서 인터뷰를 위한 준비를 하고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결과라고 믿는다.
1시간 동안의 인터뷰가 끝나자 베를린 신문처럼 건물 안을 투어 해주는 서비스를 받았다.
인상적인 것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공동 방송 센터이다.
오늘의 라디오 방송도 러시아와 벨라루스 전역에 방송된다고 했다.
미하일기자가 오늘의 인터뷰는 라디오 방송과 신문 기사로 나올 거라며 내가 건네준 명함에 적혀있는 메일을 확인해 준다.
저녁식사라도 함께하자는 말을 작별 인사로 남겼다.
건물 밖으로 나와 최누가통역과 함께 지하철 역까지 걸으면서 인터뷰 내용을 체크해 보고 서로의 신상을 간단하게 나누고 배웅해 드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민족감과 감사의 마음, 복합적인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
베를린에서처럼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건물 주위를 빙빙 돌고 싶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세차장 안의 카페에 들러 우유를 넣고 끓인 쌀죽과 샐러드, 리뾰시카라고 불리는 두툼한 빵과 달걀 프라이 2개와 우즈베크 홍차도 한잔 마시고 나와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디자인 공장’이란 이름의 건물 안으로도 들어가서 러시아 작가들의 창작작업의 결과물도 보고 ‘빵 공장’이라는 이름의 창작물 샵도 구경했다.
나 혼자서는 넘어설 수 없는 큰 장벽처럼 보이던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의 인터뷰가 모스크바 본사에서 이루어졌다. 그것도 하루 만에 순식간에..,
르제프 시, 외곽을 지나는 M9, ‘발트’ 연방도로변에는 “군인”이라는 제목의 대형 조형물이 있다. 2차 대전에서 러시아는 2,700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2차 대전의 승리는 러시아에 의해서라고 봐도 될 만큼 많은 희생을 치렀다.
황량한 평원에 산처럼 서있는 “군인” 조형물이 바라보이는 주유소 주차장에서 2일을 보내며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모스크바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정말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하루 동안의 일들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나도 나를 감당하지 못하겠는 이 만족감.
낯선 도시, 낯선 거리에서 나는 오늘도 걸으면서 혼자 웃고 다닌다.
9월 28일부터 영하로 떨어진 시베리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Trans Eurasia Series”라는 이름으로 서울, 광주, 부산에서 출발해서 시베리아를 거쳐 암스테르담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횡단 도로에 대한 자료를 반복적으로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캐치프레이즈는
”고립된 섬,
400킬로미터에서
유라시아 대륙,
1만 4000킬로미터로의
일상의 확장에 도전하다 “입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탐험가김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