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닐 때 사장님이 공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몇 번이고 얼굴이 빨갛도록 강조한 적이 있었다. 본인의 웃픈 경험까지 이야기하며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에 신중을 가하라고 강조의 강조를 하셨다.
사장님의 일화는 이러했다. 본인이 선글라스를 제작하면서 브랜드 이름을 정하지 못해 작업지시서 브랜드란에 '추후 통보'라고 기입했다고 한다. 추후 통보는 말 그대로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뜻이다. 그! 런! 데 놀랍게도 선글라스에는 '추후 통보'라는 글귀가 새겨져 생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사장님은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웃긴 것을 참느라 애를 썼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이까 의심도 했었다.
그! 런! 데 창업을 하면서 나의 상품을 몇 번 제작하다 보니 이런 일화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ㅜ.ㅜ) 나 또한 웃지 못할 일을 몇 번 경험하였으니 말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나의 일화는 체크무늬 원단으로 가방을 만들게 되던 때였다. 당연히 체크의 가로 세로는 똑바로 나오는 것이 원칙이라 생각했지만 내 가방의 체크는 가로 세로뿐 아니라 사선까지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너무 당황하여 공장 사장님께 클레임을 제기하니 체크의 정확한 패턴 위치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들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가당키나 한 말씀이냐고 화를 내었지만 이미 제품은 모든 생산이 끝난 후였고, 모든 뒤처리는 나의 몫이었다.
여기서 이런저런 일화를 다루는 이유는 그만큼 공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으며 정확의 정확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험상 공장과의 소통에서 오류를 범하게 되는 이유를 보자면 1) 애매모호 2) 정보의 누락 3) 어려운 언어의 선정 4) 디테일의 부족인 듯하다. 공장은 우리의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제품과 업체를 상대하다 보니 정보가 엉킬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가 건네준 지시서에 의존하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지시서의 내용이 불명확하면 틀림없이 잘못된 상품이 나온다.
소통의 오류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
1) 애매모호
제품의 정보를 적을 시에 애매모호한 정보를 주는 것은 100%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올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사각을 그려놓고 가운데에 단추를 달아주면 된다는 표현도 애매모호함에 포함된다. 디자이너는 '여기'가 가운데라 생각했을지라도 생산자는 '저기'가 가운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수치화를 시켜라. 가운데라는 표현보다 사각에서 정확히 가로 세로 몇 cm 혹은 몇 mm에 본인이 달고 싶은 단추가 위치하는지를 적어야 한다.(설사 그것이 상식적으로 가운데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색상도 마찬가지이다. 파란색, 빨간색과 같은 표현도 부정확할 수 있다. 본인이 원하는 색상의 샘플을 같이 전달하거나 팬톤 컬러의 색상 번호를 적어주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무엇이든 각자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숫자 혹은 샘플 및 사진 등의 자료들로 애매모호함을 없애야 한다.
2) 정보의 누락
들어가야 할 정보가 빠지는 것은 100% 주문자의 잘못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 내용을 전달하기 전에는 지시서의 내용을 몇 번이고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검토를 할 때 잘못 표기된 내용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더 정확하게 더 적어야 할 것은 없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보기에도 완벽한 지시서라 생각이 되어도 혹시나 더 정확할 순 없는지 고려하면서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꼭 애매모호한 표현을 찾게 되고, 보다 더 확실한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3) 어려운 언어의 선정
지시서의 내용은 무조건 간결하고 쉽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예전 사장님의 일화 중 추후 통보도 어쩌면 예견된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추후 통보가 어려운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다. 혹은 특이한 브랜드를 만들려고 이런 이름을 쓰나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차라리 '아직 브랜드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이번주내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면 모두가 이해하지 않았을까. 지시서는 초등학생이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
4) 디테일의 부족
어쩌면 이 부분이 제일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디테일, 즉 작은 것을 섬세하게 잡아서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은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디테일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의 체크 가방 패턴이 똑바로 나오지 못한 것도 디테일의 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생산을 맡길 때는 '설마...'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혹시나 싶은 것도 그냥 입 밖으로 청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좋다. 나도 설마 체크무늬가 삐뚤게 나오겠어라는 마음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결과는 어떠한가?! 이때 체크는 꼭 사각 형태에서 가로 세로가 꼭 직각이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절때 삐뚤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라면 그런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머릿속에서 혹시나 싶은 것들은 모두 언급한다. 동그라미를 제품을 맡겨도 꼭 원형이 찌그러지지 않고 완벽한 원형을 유지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당연한 거라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모른다. 찌그러진 원형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공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지시서라는 점이다. 그러면 지시서는 어떻게 쓰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생각보다 간단히 지시서 예시 샘플들을 찾을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 '지시서'라고 검색을 하면 다양한 지시서 이미지들이 나온다. 여기서 자신에게 맡는 품목의 지시서 예시를 골라 작성을 하면 된다. 몇 개의 지시서 샘플을 비교하며 좋은 내용들을 골라 자신만의 지시서로 만든다면 더욱 훌륭할 것이다. 나는 주로 구글에서 검색을 많이 하는 편이며, 이미지로 검색을 한다. 그러면 한눈에 원하는 지시서 샘플을 고를 수가 있다.
'제품 지시서'라는 검색어만 넣어도 다양한 지시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애매모호함을 줄이기 위해 색상 샘플을 말한 적이 있다. 한 번은 플라스틱 제품을 공장에 의뢰했는데 색상이 중요한 상품이었다. 종이에 원하는 색상을 뽑아 공장에 주었는데 놀랍게도 공장에서는 그 종이를 복사해 나눠가졌고, 최종적으로 나는 원본의 복사본의 색상을 담은 제품을 받아보게 되었다.(공장과의 일화는 끝이 없다 ^^;;ㅎ) 다행히 샘플 작업이어서 수정이 가능했지만 메인 생산이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 이후로 종이도 믿지 못하고 같은 재질의 플라스틱으로 색상 샘플을 건네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색상 샘플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나의 아이디어는 모든 제품이 싸게 싸게 모여있는 다이소였다. 다이소에 가서 색상 샘플 쇼핑을 한 적이 있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마음에 드는 색상을 지닌 상품을 구매하여 공장에 같이 전달하였다. 이게 나의 꿀팁이라면 꿀팁이라 공유해 본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나의 색상 샘플들
제품에서 생산은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제품의 꽃이라면 꽃일 수 있는 작업이다. 꽃이 피기 전에 햇빛도 주고 물도 주고 섬세하게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과 같이 생산이 들어가기 전 공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해야 한다. 그래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생산 틈틈이 방문하여 중간 점검을 하는 것도 권한다. 생산이 들어가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손안에 완벽한 제품이 오기까지 안심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