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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의 가치

자신의 삶이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관점

by 에이치 H

사람은 괴로움을 겪으면 크건 작건 상처를 입고, 심하면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영향을 받게 된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기만 한, 티 하나 없고 깨끗한 백지에 연필로,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유성매직으로 낙서가 되고 가끔은 칼로 흠집이 나듯이 말이다.

그런 것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고, 그런 불가역성이 괴로움을 더 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괴로움의 가치는 무엇일까

괴로움의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 경험상 타인이 겪는 비슷한 괴로움에 대한 가능성 있는 인과와 사정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일에 몇 번 마음을 쓰다 보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도 그동안의 경험이나 견문을 바탕으로 비슷한 추측을 하게 된다.


한 때는 길을 걷다가 내 눈앞을 지나가는 일면식도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평범해 보이는 저 사람은 과연 어떤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 괴롭다 할 때, 그 "괴롭다"는 세 글자는 수 백가지 사연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 우울하다 할 때, 그 "우울함"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하여 내뱉은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처지, 아니면 그 사람입장에서는 말하기 난처한 여러 사정을 내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울함을 예로 들어보겠다.

마음이 우울하니, 의욕이 없고 일하기가 싫을 것이고, 할 일을 제 때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 장기간에 걸쳐 쌓아 두었던 사람들로부터의 신뢰를 갉아먹게 된다. 이로 인해 그 자신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직장에 계속 다닐 수밖에 없거나 사정상 계속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반복적으로 시간약속을 못 지키거나 과업을 달성 못하면, 자기 효용성은 한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회생활하면서 나 우울증이 있으니 좀 봐주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아둔 재산이 없다면 일을 제대로 못하니 당연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도 높다. 돈은 안 벌리는데 지출은 일정하거나 병원치료로 더 많이 들 테니 잔고가 바닥이 나거나 카드값을 결제일을 맞추지 못해 카드사에서 전화라도 오면 마음은 한 없이 위축된다.


큰맘 먹고 병원에 간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약이라도 먹고 빨리 정상생활을 하고 싶은데, 처음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약은 안 주고 상담을 해 보자고 할 수 있다. 매번 내원할 때마다 감당해야 하는 비용도 부담되고 신세한탄도 같이 하니 속은 좀 시원해지지만, 우울감이 줄어드는지는 잘 모르겠고 시간만 하 세월로 지나갈 수도 있겠다.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다고 해도 효과가 없거나 적정량을 찾아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용케 효과가 있어도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효과가 조금 보여도 이걸 내가 평생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자꾸 끊고 먹고를 반복할 수도 있겠다. 물론,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이나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정신과에 다닌 이력 때문에 나중에 보험 등을 들 때 문제가 있지 않을까, 병원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라면 자신의 우울감으로 인해 자식에게 밝은 표정을 못 보여주고 늘 어두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걸릴 것이다. 혹여 자식 앞에서는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어낸다고 하여도 그럴 때마다 연기를 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낄 것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지불식간에 자식들에게 나쁜 영향이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될 것이다. 어디가 부러지면 티라도 날 텐데, 남들 앞에서는 멀쩡한 척해야 하고 그런 고충을 눈치도 못 채는 가족들이 원망스럽고 한 없이 외로워질 수도 있겠다.




길게 썼지만, 사실 이는 어떤 사람이 "우울하다" 할 때,

그 사람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상상가능하기 어려운 사정을 단 한마디 "우울하다"로 표현할 것일 수 있다.



"힘드시죠" 아무것도 아닌 말 한 마디

살면서, 크고 작은 괴로움을 겪으면서,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사람 간의 언어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그 사람의 사정과 인과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누군가 몸이 아프다. 우울하다. 회사 다니기 싫다. 남편이 밉다. 자식 때문에 힘들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부모님 병 간호하느라 힘들다. 연인이 떠나가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 말을 멀리 서라도 들으면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면서도 가끔 멈칫한다.


그 추상적인 한마디 말은 단순히 압정에 손끝이 찔린 아픔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그 깊이도 알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을 겨우겨우 있는 힘을 다 짜내 한마디 말로 외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추상적인 말 한마디에 수 백가지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지나친 예민함과 부산함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그 말로써 자신의 사정을 누군가 조금은 들어주기라도 바라며 비명을 지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좋은 말씀 몇 시간을 들어본 들 아무 감흥이 없다가도,

자신의 사정과 인과를 알아줄 것 같은 사람과 점심 한 끼 먹다가

"힘드시죠?"

단 한 마디, 별 것도 아닌 말을 들으면 눈시울이 시큰해지다 저항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언젠가 타인에게

"힘드시죠?"

그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억울하게 겪고 있는 것 같은 지금의 괴로움도 나름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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